지금 우리 정치가 잘 굴러가고 있다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새 정부 출범후 언제 한번 여야가 오손도손 모여 앉아 국정을 논의하는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있는가. 만나면 싸움이요, 돌아서면 험구다. 원래 여야는 권력을 놓고 벌이는 경쟁관계다. 대립하고, 대치하고, 말로 공격하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오늘의 여야관계는 분명 정상이 아니다.
지금은 이른바 지자제선거 정국이다. 그렇지만 지방선거는 실종된 것처럼 보인다. 검찰의 환란(換亂)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YS 답변서 파문」으로 여야 사이에 첨예한 전선이 형성됐고 여야가 대판 싸움을 벌이다 보니 지방선거 후보들은 잊혀져버렸다. 여야가 지방선거 전략에서 맞붙긴 했지만 유권자들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도대체 후보를 비교 평가할 기회가 없으니까 말이다.
여야관계가 이처럼 된 이유는 무엇인가. 정국이 불안정하다 못해 위태롭게 된 근인(根因)은 다름아닌 「총리 인준」 문제다. 여당은 야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고 불평하는데 그 시초가 다름아닌 총리 인준 문제였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작금 정국의 화두가 된 「정계개편」이다. 거대 야당의 힘에 눌려 되는 일이 없으니 인위적으로라도 의원 숫자를 늘리겠다는 것이 여권핵심부의 생각이다. 대대적인 정계개편 전에 개별 영입을 시작한 것도 국회에서 총리 인준 문제를 처리하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0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그 어느때보다도 확실히 정계개편 의지를 천명했다. 많은 개혁법안과 예산안을 올 정기국회에서 꼭 통과시켜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야당 태도로 보아 또다시 물고 늘어질 것이 뻔하니 여당 다수의석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언제, 어느 기관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인 지는 분명히 밝히지 않았지만 여론의 71%가 정계개편을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언론사들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비슷한 것은 사실이다. 야당의 행태에 반대하거나, 여당의 그동안 대응이 다 옳다고 생각해서 정계개편을 찬성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수 야당, 소수 여당 체제」를 지켜보면서 아무래도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면 정계개편이 과연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정국 불안을 가져오고, 그래서 국제신인도를 떨어뜨린, 모든 일의 시작이 총리 인준 문제였으니 정계개편으로 다수의석을 확보해 이를 치유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볼 수 있을까. 정계개편의 필요성을 인정한다해도 미리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정계개편 이후 또다른 문제들이 생겨날 수 있기때문이다.
정치권의 대변혁이 경제회생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인가. 정계개편으로 다수 여당이 되면 그동안 비난하던 야당의 「수의 논리」를 그대로 구사할 우려는 없는 것인가. 국난 극복을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 십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여소야대의 붕괴가 필수적이라지만, 그 결과가 다수 여당의 독주(獨走)로 나타나고, 이것이 또다른 정국불안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김대통령과 여권 핵심인사들에게 이같은 가능성을 상기시키는 것은 정계개편을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근본원인만 제거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단순 논리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하기 위해서다. 정계개편을 찬성하는 다수 국민도 그 결과가 좋지 않으면 냉정하게 등을 돌릴 것이다. 정계개편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자계(自戒)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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