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시대를 맞아 한국의 기업구조조정과 관련해 가장 많이 거론되는 말이 투명성과 신뢰성이다. 기업의 투명성·신뢰성 문제는 한국이 IMF로 가야했던 중요한 원인중의 하나였으며 IMF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절실하다.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일은 외국투자가들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한국의 기업들과 나라 전체가 IMF를 극복하고 성장의 궤도로 재진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최근 시티은행과 체이스맨해튼은행은 꾸준히 거론되던 한국 금융기관 인수의사를 철회했다고 한다. 실사 결과 부실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크다는 이유였다. 실무자에게서는 『경악할만한 정도』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는 그동안 해당 금융기관이 내놓았던 회계자료가 완전히 엉터리였다는 말과 다름없다.
부실회계의 책임은 해당 기업뿐 아니라 정부에도 있다. 아직도 정부는 대손충당금을 50%만 반영토록 하는등 회계원칙까지 일일이 제시하는 잘못된 관행을 유지하고 있고 기업은 기업대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자산재평가등을 실시, 기업의 자산가치·순익등에 멋대로 덧칠을 하고 있다.
이제 글로벌시대에 이같은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앞으로 부실한 재무제표는 투자유치의 실패는 물론, 엄청난 손실을 기업에 안겨줄 수도 있다. 외국의 경우 정부의 개입이나 기업, 공인회계사의 잘못 등으로 손해가 빚어졌을 경우 소액주주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외국인투자가 밀려드는 상황에서 만일 장부조작이나 회계부실같은 관행이 지속된다면 외국투자가들로부터 무차별 소송을 당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의 인식은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국내 대기업들은 연결재무제표의 작성문제가 나오면 온갖 이유를 다붙여 『안된다』고 말한다. 예를들어 『해외에 진출한 자회사가 많고 나라마다 환율도 달라, 연결재무제표를 만드는데 6개월이나 걸린다』는 식이다. 그러나 선진국의 대기업들은 한국기업보다 더 많은 해외기업을 갖고 있는데도 회계년도말로부터 2주에서 1개월만 지나면 감사공고를 내보낸다. 이런 문제는 회계시스템의 자동화를 통해 쉽게 해결해 나갈 수있는 부분이다.
기업회계의 투명성 보장을 위해서는 정부와 공인회계사의 인식도 크게 바뀌어야 한다. 정부는 그해 그해 경제사정에 따라 주식평가손 반영비율을 지정해주는등 일관성없는 회계지침을 남발해서는 안된다. 공감할 수 있는 일관성있는 회계원칙을 확립하지 않고는 투명성과 신뢰성은 얻어지지 않는다. 공인회계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에서는 대주주와 감사인(회계사)과의 관계를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로 비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등 선진국에서 이런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감사인들이 대주주로부터 원칙에 어긋난 일을 강요당하면 사표를 제출하고 사유서를 증권감독원에 제출하게 돼있다. 그러면 그 다음날로 그 회사의 주가는 절반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이같은 장치는 투자자의 보호뿐만 아니라 기업 스스로를 보호하기위해서도 필요하다. 선진국에서는 공인회계사가 부실감사를 했을 경우 소액주주들로부터 소송을 당하며 경우에 따라 손해배상액이 손해액의 3배에 이르기도 한다.
신뢰성과 투명성은 사회를 건전하게 이끌어가는 기본적인 원동력이다. IMF가 요구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탄생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면 우리 국민은 충분히 이 어려운 시대를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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