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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채권 정리’ 정부 나서라(國難을 넘자: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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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채권 정리’ 정부 나서라(國難을 넘자:26)

입력
1998.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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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박승 중앙대교수·경제학/한국은행은 돈 풀고 재정은 더욱더 긴축 금리 15%이하 돼야경제가 풀리지 않는다. 환란(換亂)이 일단 수습되고 국제수지가 흑자를 내게 됐는데도, 그리고 정부가 온갖 개혁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도 경제의 위기국면은 개선의 조짐이 없다. 기업도산과 금융위기는 이어지고 있고 증권시장과 부동산의 침체, 그리고 실업사태와 국민생활의 고통은 오히려 깊어지고 있다. 왜 그런가. 병을 고치려면 맥을 잘 짚어야 하며 위험물을 제거하려면 뇌관을 잘 다스려야 한다. 변죽만 다스려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다. 지금 우리 경제가 그러하다.

그러면 현 경제위기의 맥과 뇌관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경제위기는 고비용 저효율 과소비로 유발된 것이고 이것들이 우리나라의 외환적자와 경쟁력 상실로 나타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외환적자와 경쟁력 상실은 다시 기업들의 연쇄도산으로 파급됐고 이것은 다시 100조원이라는 부실채권을 금융권에 떠맡기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경제의 모든 구조적 문제들이 결국 금융부실이라는 집약된 형태로 금융기관에 전가돼 있는 것이다.

현 경제위기의 뇌관은 자본금이라야 모두 합해 10조원도 안되는 은행들이 100조원의 부실채권을 안게 됐고, 이것이 앞으로 계속 쌓일 전망이며, 그래서 은행 스스로 해결할 능력도 가망도 전혀 없는데 정부에서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은행의 돈줄은 꽁꽁 막혀 기업은 질식상태에 있고 대외적으로는 은행부실이 나라의 신용까지 추락시켜 외자가 들어올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여기다가 견딜 수 없는 고금리까지 가세하여 <기업도산→부실채권→은행부실→기업도산> 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됐는가. 이것은 지난날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에 의한 성장방식의 산물이다. 성장은 대기업이 주도하고, 대기업은 차입으로 성장하고, 차입자금은 은행에서 대주고, 은행이 대주도록 한 것은 정부였다. 따라서 부실채권의 책임을 은행들에게만 물을 수는 없는 것이며 굳이 따진다면 정부와 은행과 재벌들이 함께 져야 옳을 것이다.

과거에도 여러차례 부실기업과 은행부실화문제에 당면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정부가 원인을 제공한 만큼 책임도 떠맡았던 것이다. 사채까지 동결하면서 기업도산을 막아주고 은행에는 한국은행의 특별자금을 줘서 부실채권을 정리하도록 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기업도산으로 엄청난 부실채권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것은 방치된 채 이에 대한 처리는 은행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경제는 풀릴 수 없는 것이며 어떤 개혁노력도 공전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기업의 재무구조개선, 외자유치, 금융개혁, 실업대책, 외국인에 대한 은행매각 등 여러가지 개혁노력이 실효없이 꼬이고만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옳은가. 부실채권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기업도산을 최소화하는 조치와 함께 이미 발생한 부실채권은 정부와 은행이 함께 떠맡아 해결해야 한다. 먼저 올해까지 은행들이 지게 될 100조원의 부실채권 가운데 은행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는 부분은 정부가 떠맡을 수 밖에 없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금융부실채권정리를 위해 향후 5년간 모두 67조원의 공공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놓은 일이 있는데 그 액수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 방향은 옳은 것이다.

금융부실채권을 정부가 떠맡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책임문제를 떠나서 이 문제를 이대로 방치할 경우 이것이 결국 이 나라 경제의 발목을 잡고 함께 침몰하는 사태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확고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향후 수년동안 다른 지출을 최대한 줄여 재정에서도 자금을 마련해야 할 것이며 토지공사와 성업공사를 통한 은행부실채권 인수대책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토지공사가 정부보증채권으로 은행의 담보부동산을 사주는 계획은 현재의 3조원을 적어도 36조원 이상으로 확대하고 여기에 성업공사도 참여케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음으로 기업의 연쇄도산이 계속되면 앞으로도 금융부실채권이 누적될 것이므로 이것을 차단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순환을 조속히 정상화시켜야 하며 그러자면 한국은행은 돈을 풀고 재정은 더 긴축하여 금리를 15%이하로 내리도록 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금융긴축과 고금리 기조는 옳은 것이지만 거기에는 정도가 있다. 어떤 기업도 현행 금리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 이상의 긴축과 고금리 유지는 연쇄도산을 유발시키고 이것은 다시 금융에 부실채권을 떠넘겨 우리 경제를 걷잡을 수 없는 악순환으로 이끌게 할 것이다.

한국은행이 돈을 풀어도 불황 때문에 올해의 수요인플레 우려는 크지 않다. 필요하다면 내년쯤에 환수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재정은 세수를 늘리고 지출을 줄여 더욱 긴축을 강화해야 총수요 안정과 금리인하를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다. 돈을 풀고 금리를 내려 기업도산을 줄이는 것은 동시에 최선의 실업대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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