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독립운동가이자 항일언론인인 우강(雩岡) 양기탁(梁起鐸) 선생의 유해가 서거 60년만인 8일 중국 장쑤(江蘇)성에서 고국으로 봉환됐다.이날 오후 3시30분 선생의 손녀사위인 박유철(朴維徹) 독립기념관장과 손자 준일(俊一)씨에 의해 아시아나항공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한 선생의 유해는 곧바로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영현봉안관에 안치됐다. 정부는 14일 오후 2시 김의재(金義在) 보훈처장 권쾌복(權快福) 광복 회장등이 참여한 가운데 안장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선생의 유해는 8명의 임시정부 수반급 요인가운데 국외에 안장돼 있던 이상룡(李相龍·90년) 선생, 박은식(朴殷植·93년) 선생에 이어 마지막으로 봉환됐다. 1871년 평양 소천에서 태어난 선생은 1904∼1910년 영국인 베델과 「대한매일신보」를 발간해 항일언론투쟁을 전개하는 한편, 안창호(安昌浩) 선생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해 독립군양성을 계획하다 「105인사건」에 연루돼 4년여간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일제의 만주침략이 본격화한 1933년부터 2년간 임정 국무령을 지냈으며 이후 조선혁명당 한국광복전선등을 통해 무장독립투쟁을 전개하다 38년 중국 장쑤성에서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이번 유해봉환은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이 서거 직전 양기탁선생의 며느리 최선옥(76)씨에게 그려준 선생의 묘지약도를 토대로 보훈처의 수차례 확인작업끝에 이루어졌다.<정덕상 기자>정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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