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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웃음/송혜진 국립국악원학예연구관(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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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웃음/송혜진 국립국악원학예연구관(1000자 춘추)

입력
1998.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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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진 곳에 숨어있던 아름다운 웃음을 발견해 내어 그것을 여러사람의 것으로 만들어준 어떤 책을 만났다. 책 엮은이의 보배로운 눈썰미가 얼마나 고맙고 즐거웠는지. 나 또한 그 아름다운 「숨은 웃음」을 혼자 하기 아까워 여기에 털어놓기로 한다.시내 큰 서점의 미술책꽂이 언저리에서 책장을 넘기면서 한창 「눈맛」을 즐기고 있는데 한쪽 구석에 옛사람들의 낙서를 모은 낙서집(「조선의 미소」)이 눈에 들어왔다. 『옛낙서라고? 참 별스런 책도 다 있구나』 싶어 펴든 이 책에는 뜻밖에도 천진스럽고 가식없는 옛사람들의 마음이 들어있었고, 그것은 도시의 피곤한 일상에 갇혀있는 내 마음을 묘하게 흔들어 놓았다. 어리숙하게 보이는 새의 큰 날개짓 하나, 전혀 무섭지 않은 도깨비의 형상, 모던하게 느껴지는 추상적인 붓자국들, 더듬이가 유난스레 긴 나비…, 그리고 맨 마지막 장에 달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어떤 복스런 조선사람의 얼굴.

도대체 이런 것이 어디 있었길래 여태껏 눈에 띠지 않았던 것일까. 부화(浮華)한 것에 휩쓸리기 마련인 세상 인심에 가려 오랜 세월 눅눅한 책갈피에서 잠자고 있었던 이런 마음은 분명코 우리의 귀한 유산임에 틀림없으련만, 어째서 이것을 보지 못한 것일까. 그러나 이것만은 아닐 것이다. 보지 못하고, 아니, 제대로 들여다 볼 안목이 없어 보지 못하는 사이에 맑고 천진하며 여유롭고 꿋꿋한 옛 문화의 숨결을 우리는 맥없이 흘려보내고 있을 것이다.

다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구든 제 옆의 「숨은 웃음」을 알아볼 줄 알고, 이것을 소중하게 가꾸려는 마음없이는 앞으로 우리들이 빈 껍데기 한국사람이 된다해도 별달리 변명할 길이 없을 것 같다.

옛사람들이 별 뜻 없이 붓질한 낙서, 거기서 풋풋하게 배어나오는 가식없는 웃음, 그것이 전해주는 가르침으로 몸과 마음에 밴 속기(俗氣)를 한풀 걷어내며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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