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어제(8일)부터 5대재벌 18개 계열사의 내부거래에 대한 직권조사에 들어갔다. 공정위의 이번 조치는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재벌개혁에 정부가 강력하고 실질적인 제도적 장치를 발동한 첫 케이스로 주목된다.새정부는 그동안 일련의 경제개혁작업에서 무엇보다 재벌의 재무구조 개선과 선단식 경영행태의 타파에 초점을 맞춰왔다. 재무구조개선은 내년말까지 부채비율을 200% 이내로 줄이라는 금융감독위원회의 주문으로 가시화 되었고, 선단식 경영행태의 타파는 외견상 그룹기조실의 해체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개혁이 미진하다거나 형식에 그치고 있다는 여론이 적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는 재벌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대기업들의 이의와 하소연이 커질수록 사회 일각에선 정부의 재벌개혁작업에 대한 의구와 불신도 커진게 사실이다. 특히 지난 1일 노동절의 대규모 노동자 시위에서 터져나온 불만중에는 경제개혁 추진상의 형평성에 대한 저항이 적지 않았다.
최근 삼성그룹등 대재벌들이 잇따라 새로운 자체구조 조정안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공정위가 내부거래 조사에 착수한 것은 정부가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한 결과로 여겨진다. 정부로선 모처럼 가시적이고 효율적인 재벌개혁의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한 것 같다.
재벌 계열사간 내부거래는 상호 빚보증이나 출자와 함께 오늘날의 재벌을 형성해온 가장 비합리적이고 불공정한 요소다. 한마디로 내부거래는 재벌들에게 무엇이든 이길 수 있다는 토양을 제공해 왔다. 내부거래에는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인 합리적 경쟁논리가 배척되기 때문이다.
같은 계열사끼리는 동일 상품이나 용역에 대해서 특혜적인 가격을 적용하고 타기업에 대해선 차별적인 가격을 적용하는 것은 내부거래의 초보다. 영업력이나 수익성이 떨어진 계열사엔 온갖 방법으로 싼이자로 돈을 대여하거나 물건을 싸게 공급해준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력을 제공하거나 급여를 대신 지불해주기도 한다. 이런 불공정 거래속에서는 아무리 경쟁력이 떨어져도 망하는 계열사가 나올리 없고 품질·가격경쟁이 제대로 발을 붙일 수 없다. 우리 경제의 고비용 저효율구조도 이에 기인한다.
빈사상태에 빠진 언론계의 실상도 따지고 보면 바로 이러한 재벌 계열사간의 불공정행위에서 비롯됐다. 수천억원의 계열사 지원으로 물량 경쟁에 나서는 재벌언론과 싸우기위해 언론계 전체의 출혈경쟁이 불가피했다. 결국 재벌 내부거래가 언론시장을 황폐화하고 민주주의를 짓밟는 요소가 되었던 것이다.
공정위의 이번 조사는 재벌개혁의 성패를 가르는 첫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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