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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제에서 환란까지:1(문민정부 5년: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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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제에서 환란까지:1(문민정부 5년:23)

입력
1998.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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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송사 손떼라” 현철에 통첩/김덕영씨와 재산소송에 뒤에서 압력행사… “돈수수 폭로” 편지/두양·신성·우성 ‘K2 3인방’ 매달 6,000만원 小山에 전달/우성 금융권 지원·김덕영씨 승소 등 ‘대가 흔적’ 뚜렷김현철(金賢哲)씨 재계인맥의 큰 줄기는 경복고 출신 기업인, 이른바 「K2 총수」 들이다. 그 핵심은 두양그룹 김덕영(金德永) 회장. 두사람은 선후배 이상의 무척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

97년 2월말. 김현철씨는 상도동 가신출신인 김무성(金武星) 의원(신한국당)으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건네 받았다. 「억울합니다. 문민정부 최대의 피해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신이 계속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문제의 카세트테이프와 녹취록을 모두 공개하겠습니다. 정면으로 대응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A4용지 4장 분량으로 정리된 편지 내용은 매우 강경했다. 한마디로 「현철씨가 더 이상 개입하지 말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막강한 현철씨에게 이같은 편지를 누가, 왜 보냈을까.

국제그룹 복원추진위원회 관계자 증언. 『96년 11월 김덕영회장을 신한종합금융 주식 횡령건으로 고소했어요. 그러나 두달이 넘도록 검찰이 기소하지 않는 겁니다. 검찰이 수사까지 모두 마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화해하라는 말만 하고 정식 기소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해 조사해 보니 현철씨가 뒤에 있더군요. 그래서 「김회장이 현철씨에게 거액을 주었다」는 요지의 녹취록을 첨부, 법대로 처리되도록 해 달라는 의사를 현철씨에게 전한 겁니다』

한보건으로 가뜩이나 심난한 상황에서 날아든 이 편지는 현철씨의 머리를 뒤흔들었다. 녹취록중 김회장이 말했다는 「인사해야 할 곳에 50여억원」이라는 대목은 바로 자신을 겨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잠시후 현철씨는 측근에게 고소건을 자세히 알아보도록 했고, 너무 개입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보고를 받은 현철씨는 즉시 국제측에 연락했다. 『죄송합니다. 김덕영회장 소유로 돼 있는 신한종금이 실제로는 국제것인지 몰랐습니다. 법대로 처리되도록 하겠습니다』

『무척 정중한 전화였습니다. 현철씨로부터 전화를 받은 지 이틀만에 김덕영 횡령건은 기소됐습니다』 국제 관계자는 검찰에 대한 김현철의 영향력과 그들의 관계를 새삼 실감했다.

두양 김회장을 잘아는 재계인사의 회고. (김회장측은 수차례 면담 및 인터뷰 요청에 해외출장을 이유로 끝내 거부했다) 『김회장은 평상시에도 현철씨를 상당히 팔고 다녔습니다. 신한종금 소유권을 놓고 제일은행과 분쟁을 벌일 때에도 현철씨가 적극적으로 돕고 있어 승소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자신도 현철씨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노라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지요』

김회장과 현철씨는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였다.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매월 한차례 이상 만나 밥도 먹고 개인적 이야기도 할 정도였다. 이들은 경복고 동문사이로 김회장이 10년 위다. 그러나 동문이상의 관계였다.

93년 3월 중순, 서울 강남의 한 일식집.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당선 축하모임이 열렸다. 주빈은 김현철, 참석자는 모두 경복고 동문들. 이 모임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의 설명. 『10여명이 모였습니다. 기업인도, 공무원도 있었지요. 순수하게 모여서 축하하는 자리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현철씨가 돈걱정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동문들이 돕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당연히 기업인들이 나서기로 했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기업인은 두양 김회장을 비롯해 신성 신영환(申泳煥) 회장, 우성 최승진(崔勝軫) 부회장 등이었다. 이들은 『돌아가면서 매월 6,000만원씩 내 현철씨의 활동을 돕자』고 결정했다. 「K2 3인방」은 이렇게 해서 결성됐다.

다음달(93년 4월)부터 이들은 롯데호텔 일식당과 중식당, 강남의 고기집 금모래, 종로의 반줄, 송죽헌, 난정 등에서 모여 매달 「돈 전달식」을 가졌다. 먼저 93년 4월 우성 최부회장이 6,000만원을 냈다. 다음달에는 두양 김회장, 그 다음달에는 신성 신회장, 그런 식이었다. 「최­김­신」의 순서였다.

그러나 이 순서는 94년 1월 우성 최부회장 차례에서 끊어지기 시작했다. 김회장을 잘아는 재계인사의 회고. 『우성의 경영이 어려워지자 최부회장은 두양 김회장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이때부터 김회장은 최부회장 몫을 대납하기 시작했습니다. 김회장이 두달 연속 6,000만원씩 현철씨에게 제공했습니다』

결국 94년부터 김현철씨에게 제공된 「K2 3인방」의 돈은 그후 「김­김­신」의 순서로 이어졌다. 김회장은 특히 95년 4월 김현철씨에게 3억원의 돈을 별도로 전했다. 신한종금 재산반환 소송 승소 직후였다. 3인방중 김회장은 김현철씨에게 특별하게 돈을 전달하는 사이였다.

김현철씨에 대한 경복 동문들의 돈 전달모임은 92년 대선전에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의 증언. 『대선직전 경복고 출신 기업인들이 모였어요. 선거에 뭔가 기여하자는 취지였죠. 이 자리에서 1인당 10억원내외를 거둬 김현철씨에게 전달하기로 의견을 모았고, 실제로 선거전 돈이 전달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날 모임에는 두양 김회장을 비롯, H그룹 총수 등 상당수 기업인들이 참석했다.

「K2 3인방」의 돈 전달모임은 96년 1월 김회장의 6,000만원을 끝으로 중단됐다. 우성이 부도나고 신성 신회장도 경영이 어려워진 것을 이유로 더 이상 돈을 내지 못하게 됐다. 김현철씨는 지난해 검찰에서 『아무런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동문들이 돈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 웃옷을 벗어 걸어놓고 음식을 먹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안주머니에 돈을 넣어 주기도 했다. 돈을 받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이 모임을 설명했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우성 부도를 전후해 12개 은행단이 750억원을 우성건설에 지원하는 등 금융권의 도움이 적지 않았다. 여기에는 현철씨가 개입된 것으로 알고 있으며, 두양 김회장의 경우 직접적으로 현철씨가 뒤를 봐 준 흔적이 뚜렷하다』 이들의 모임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의 증언이다. 그는 『김회장은 청와대 사정에 불려가기도 했으나 현철씨의 직접적인 도움으로 별일 없던 것처럼 처리되기도 했다. 특히 신한종금 주식 반환소송에서는 전적으로 현철씨의 도움으로 승소했다』고 말했다.

「공짜 점심」은 없는 법. 김현철씨에게 돈 준 기업인들은 대부분 대가를 챙겼다. 한솔그룹 조동만(趙東晩) 부회장은 94년 6월부터 96년 12월까지 매월 5,000만원가량을 김현철씨에게 줬다. 그 대가는 개인휴대통신(PCS) 사업권으로 알려져 현재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93년 12월부터 95년 12월까지 5,000만원씩 활동비를 지급한 이성호(李晟豪) 대호건설 부사장은 고속도로 휴게소나 유선 TV 등 각종 이권사업에서 김현철씨를 대신했다. 그는 또 동보스테인리스라는 철강판매사를 설립해 포철로부터 스테인리스제품의 독점 판매권을 따내기도 했다.

김현철씨가 빈번히 만난 재계사람들은 경복고 출신만은 아니었다. 별도의 끈으로 만난 기업인도 적지 않았다. 김현철씨의 친구인 박태중(朴泰重)씨나 이성호씨 등과 술자리를 자주한 H그룹 C회장이나 C그룹 S그룹 S사의 오너들이 대표적이었다. 「소산(小山)과 스타클럽」의 화려한 등장이었다.<이종재 기자>

◎국제측 ‘녹취록’ 내용은/현철 두손들게한 테이프 “인사해야할 곳에 50억” 등 양정모­김덕영씨 대화녹음

김현철씨는 국제로부터 편지 한통을 받고 김덕영씨의 신한종합금융 주식 횡령건에서 손을 뗀다. 직접적인 압력수단이었던 녹취록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김덕영씨는 장인인 양정모 전 국제그룹회장에게 현철씨의 도움으로 제일은행을 상대로 한 신한종금 주식 반환소송에서 승소(94년 12월)했다고 자랑했다. 국제측이 검찰에 제출했던 양 전회장과 김씨와의 대화내용중 김씨의 발언을 발췌, 정리한다.

▷95년 2월19일◁

○…신한투금 항소심 재판은 안기부의 서동권과 손진권 라인이 움직에게 돼 있었다.(신한종금 사건이 안기부사람들에 의해 피고측인 제일은행쪽에 유리하게 전개되는 상황이었지만) 그걸 김현철이가 도와줘서 뒤집은 것이다. 93년 6월 중순 골프치러 가는데 현철이가 내차로 이 문제 때문에 전화를 했다. 「선배님 이것 참 힘들게 돼 있더구만요…. 어, 걱정마시고, 제가 다끝냈으니…」라고.

○…신한투금 대법원 판결도 그저 된 것이 아니다. (최종 판결에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다 뒷 힘이 있었다며) 청와대 사정에 끌려가 소송포기하라는 압력을 받았었다. 그걸 현철이가 나서서 또 해결해 준 것이다.

○…이번에 사무총장된 김덕룡이와 서석재가 자기 사람들에게 사장자리 만들어 줘라 해서 지금 데리고 있다.

▷95년 3월10일◁

○…신한투금 주식 찾는데 주식 값이 115억원, 변호사비가 42억원에다 인사해야 할 부분이 50여억원. 다 합쳐서 210억원정도 들어간다.

○…94년 5월31일 신한투금이 우선주를 발행한 것은 부정이고 불법이었다. 법에 무의결우선주를 못하게 돼 있는데 그걸 힘을 써서(김현철의 도움으로) 고치고 바꾸고 해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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