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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플레이를/노진환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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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플레이를/노진환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8.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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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金大中)정부가 출범한지 3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앞 정권의 실정 탓에 물려받은 환란(換亂)은 이제 진정국면이다. 외화유동성을 확보해 이 만큼이라도 급한 불을 끌 수 있게 된 것은 누가 뭐래도 김대통령의 위기대처능력 덕택이다.환란에 효율적 대처가 가능했던 것은 아마도 그가 당선자시절부터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준비된 대통령」이란 구호가 결코 빈말이 아니었음을 실감케 한다. 무엇보다도 제1차 노사정 합의도출은 돋보인다. 집권계층의 잘못으로 피해만 고스란히 떠안게 된 근로자가 사용자나 정부와 함께 고통분담 약속을 하리라고 어느 누가 짐작이나 했던 일인가. 이 합의는 국가신인도 회복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개혁의 전도가 그리 밝지만은 않은 것같다. 유례없는 공동정권의 생래적(生來的)한계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면 이에 못지않게 김대통령의 집무스타일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많다. 지난 2개월여는 솔직히 말해 김대통령 혼자 뛰고 혼자 바쁜 나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만큼이라도 된 것이 새 정부 성원들이 자기 몫을 다했다거나 공조직이 효율적으로 가동됐기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이제야 말로 조직이 움직일 차례다.

새 정부 개혁작업과정에서 취약요인이 있다면 시스템플레이가 안 이뤄진다는 점이다. 지금까진 칠순의 대통령 혼자서 북치고 장구쳤을 뿐이다. 문제의 심각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의 역량이나 정열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얼마전 방한한 미 정부의 한 고위인사가 김대통령에 대해 『너무 정확한 분(He is so precise)』이라고 평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김대통령의 업무스타일이 「총체적(over all)」이기 보다는 「너무 꼼꼼하다(so precise)」는 말을 몇차례나 반복하더라는 것이다.

「작은 것」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큰 것」을 놓칠 수도 있다는 충고가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 많은 교회에서는 김대통령의 건강을 기원하는 기도가 줄을 잇는다고 한다. 오늘날 처럼 복잡다기한 현대국가에서는 아무리 젊고 건장한 대통령이라 해도 국정의 모든 것을 챙기는 만기친람(萬機親覽)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무모하게 과욕부리다가는 역풍 만나기 십상이다.

우선 대통령이 너무 사소한 것까지 챙기다 보면 하부조직의 창의력이 손상받기 쉽다. 공직사회가 자신감을 상실한 채 위로부터의 지시만 기다리는 사태가 생길 개연성이 크다. 지난달 27일 고위공무원들을 상대로 한 김대통령 특별강연회에서 있었던 일이 좋은 예다. 어느 부처 국장은 자신이 맡은 고유업무를 대통령에게 질문해 실소가 나오는 분위기가 됐다고 한다. 매사를 윗분의 뜻에 따라 결정하려는 이런 피동적 행태는 공직사회발전을 저해한다.

다음으로 경계해야 할 사항은 독선독주다. 한나라당의원 빼가기가 좋은 예다. 여권은 이를 자발적 영입이라고 강변한다. 문호를 개방하니까 스스로 들어왔다는 주장이다. 이를 믿을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인사의 지역편중 시비만 해도 그렇다. 다 제쳐두고 최근의 한전사장 공모경우만 보자. 정부가 경영마인드있는 전문경영인을 영입, 한전의 경영구조를 개선하자는 취지였다. 결과는 실물경험 없는 순수학자 출신이 발탁됐다. 그는 집권당 유력의원의 친형이다. 청와대의 에너지전문가 운운하는 해명이 무척 옹색해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비판에 눈을 감아버리는 오만이다. 환란관련 시비가 끊이질 않는 전경제부총리를 경기지사후보에 공천한 것은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욕이 배따고 들어오느냐」하는 식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적어도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집권당의 자세는 분명 이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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