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부터 열리는 성대한 잔치에/스케이트·8월의 크리스마스 강원도의 힘·아름다운 시절 등/우리작품 4편을 공식 초청/예년같이 ‘참가에 의의’만이 아닌 최우수데뷔감독상 까지 기대된다제51회 칸국제영화제가 13일부터 24일까지 프랑스 해변도시 칸에서 열린다. 지난해 50주년 행사는 일본의 「우나기」(이마무라쇼헤이 감독)와 이란의 「체리향기」(압바스키아로스타미)가 그랑프리를 공동수상하는 등 동양영화의 잔치였다.
올해에는 유럽영화의 「의지」가 두드러져 보인다. 경쟁부문 본선질출 22편중 유럽영화는 모두 13편. 미국영화는 4편이 본선에 올랐고 개막영작 「프라이머리 컬러스」,폐막상영작 「고질라」 등이 모두 미국영화다. 동양영화는 대만영화 2편뿐으로 숫적으로 열세이다.
올해의 출품작은 대체로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평. 테크놀로지에서 진일보한 작품은 물론,영상언어의 진정성을 탐구한 수준높은 작품이 많아 집행위원회 측이 흐뭇해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을 심사위원장으로 하는 10명의 심사위원회는 본선진출작을 대상으로 황금종려상,남·녀주연상 등 모두 7개 부문수상자(작)를 선정한다.
국영화계가 제51회 칸영화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각별하다. 우리 영화계에 작가주의적 영상의 부흥분위기가 무르익은 때에 맞춰 4편이 공식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단편경쟁부문의 「스케이트」(조은령감독·여), 주목할만한 시선의 「강원도의 힘」(홍상수), 비평가주간의 「8월의 크리스마스」(허진호), 감독주간의 「아름다운 시절」(이광모)이 화제의 작품이다.
고작 1편 정도 참가했던 예년의 「구색맞추기식 초청」이 아니라 이제는 세계영화계가 한국영화에 주목하기 시작한 셈이다. 홍상수 감독과 허진호 감독은 최우수데뷔감독이 받는 황금카메라상도 기대하게 됐다.
관심의 초점은 한국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된 「스케이트」. 비록 단편이지만 『독립영화를 하는 것이 독립운동만큼 힘들다』는 우리의 열악한 풍토에서 일군 성과여서 더욱 값지다. 「스케이트」는 샛강에서 얼음을 지치다 만난 소녀와 농아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보이지 않는 벽을 그린 작품. 35㎜, 10분짜리 흑백영화이다. 지난 해 제4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예술공헌상을 받은 작품으로 고적한 영상미와 음향처리로 소리를 듣지 못하는 소년의 내면을 성공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뉴욕대에서 영화수업을 한 조감독은 『미국서 만난 장애인친구를 생각하며 만들었다. 서로가 가진 인생의 골을 이해하지 못해 생겼던 어색함과 안타까움을 영상으로 옮기려 했다』고 말한다.
「강원도의 힘」의 출품은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주의적 영상이 국제적 잣대로 평가를 받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밴쿠버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받는등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던 홍상수감독은 자신의 영화제목 만큼 독특한 영상미학을 가진 작가. 삶의 사소한 구석구석을 응시하는 그의 카메라는 일반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가공되지 않은 일상적 리얼리티」를 만들어낸다. 「강원도의 힘」은 그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한때 사랑에 빠졌다가 이제는 각자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남녀를 그렸다. 애써 그들의 감정 속으로 들어가려는 수고를 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행동과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기만 할 뿐이다. 관객은 냉정한 화면과 대사 속에서 역설적으로 더욱 뜨거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는 흥행과 평가에서 모두 성공한 작품. 서울에서만 40여만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올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작품상과 신인감독상, 여우주연상(심은하)을 휩쓸었다. 이 영화에서 허감독이 보여준 것은 「절제의 미학」. 불치병에 걸린 총각사진사와 아직 소녀티를 간직한 주차단속원의 잔잔한 사랑이 내용이다. 「시한부인생을 사는 남자」라는 설정은 당연히 격정과 통곡을 예상케 한다. 그러나 영화에는 격렬한 포옹이나 눈물이 없다. 서로의 애틋한 마음을 확인하지 못한채 사진사는 사진을 찍다 죽어가고, 그 사실을 모르는 여자는 사진관 주위를 서성거린다. 신인감독답지 않은 자제력이다.
허감독은 『연거푸 쏟아지는 호평이 부담스럽지만 기분은 무척 좋다』고 말한다. 연세대 철학과를 나와 대우전자 홍보실에서 근무했던 그는 『연습같은 삶이 싫어』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어려웠던 결단에 대한 보답이 행복하다.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은 시나리오단계부터 국제적으로 평가를 받은 작품. 95년 세계적 권위의 미 하틀리메릴 국제시나리오콘테스트에서 그랑프리를 안았고, 칸영화제도 이 영화의 완성을 기다려왔다. 영화제 집행위원회는 초청장을 통해 이례적으로 「큰 기대」를 표시했다.
「아름다운 시절」은 6·25가 끝난 후 미군부대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이야기한 작품. 우리 자연의 색깔과 아름다움을 잘 살린 서정적 영상과 세심하게 연출된 아이들의 연기등이 눈길을 끈다. 이감독은 초청장을 받은 이후 영화제 개막일을 1주일 남겨놓은 7일 현재까지 작품의 후반기 작업을 벌이고 있다.<권오현 기자>권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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