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회 빈자리엔 ‘新정치 軍脈’/PK·K2·현철군맥 등 또다른 이너서클 형성 “肅軍명분에 흠집”/하나회 옥석 안가리고 무조건 배제 軍전문성 손실 지적도/“당시 깜짝쇼 人事 불가피, 건강한 군대로 거듭나” 엇갈린 평가50여년만에 이뤄진 여야간 정권교체에 따른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98년3월4일 국방부청사 1층 기자실. 총리임명동의안 처리여파로 3월3일에야 취임한 천용택(千容宅) 신임국방장관이 국방부 출입기자들과 첫 상견례를 갖고있었다. 몇마디의 덕담이 오간뒤 기자들의 질문이 잇달았다. 국민회의 소속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국회 국방위에 소속돼 줄곧 국방업무와 관계를 맺어온 천장관은 기자들의 질문에 평소의 소신을 막힘없이 밝히는등 「국방전문가」로서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때 한 기자가 불쑥 물었다. 『지난해 대선을 전후해 군내외에서는 하나회이후의 새로운 사조직명단이 나돌고 있다고합니다. 이른바 「만나회」「나눔회」등으로 불리는 사조직의 실체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사조직」이란 말에 천장관은 잠시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나도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현재 우리군에는 사조직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단 그 문제가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며칠후 국방부는 사조직 실재여부에 대한 기자들의 잇단 채근에 『군내에 사조직은 없는 것으로 알고있다』는 다소 모호한 발표로 이문제를 정리했다.
「사조직」
5·16과 12·12라는 두차례의 군사쿠데타를 겪어야했던 우리 현대사에서 군출신 대통령이든 민간인 출신이든, 군을 어떻게 완벽히 장악하느냐는 정권안보의 기틀을 다지는 데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문민정부」라는 이름아래 출범한 YS정부의 군개혁의 화두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회로 불리는 사조직의 철저한 제거였다고 할 수 있다.
문민정부들어 첫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합참의장, 국방장관을 지내는등 문민정부에서 군개혁의 견인차역할을 했던 김동진(金東鎭) 전 국방장관의 평가다.『사조직 척결은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국정지표인 「변화와 개혁」을 군내부에서 추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이었습니다. 제도와 관행을 고치는 것보다 단순히 사조직척결에만 집착했다는 비난도 있으나 지금 생각해도 당시로서는 옳은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이제 군에 사조직은 발디딜 틈이 없게 됐습니다. 그리고 12·12관련자 처벌등을 통해 이땅에서 군이 정치에 개입할 여지를 봉쇄한 것도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같은 하나회라도 능력과 인격이 뛰어난 장군들은 선별구제해야 했으나 당시 장군들의 숫자가 정원을 넘어서는등 포화상태였던 점이 걸림돌이 돼 실행못했던 것이 아쉽습니다』
역시 문민정부에서 국방정책분야의 실무역을 맡았던 예비역 A장군의 증언.
『YS의 군인사, 특히 하나회 척결과정을 「깜짝쇼」라고들 비난합니다만 당시 상황으로서는 전술적으로 불가피한 조치였습니다. 군내부에 전(前)정권의 실세그룹이 건재하고 있는데다 군부 주요요직의 현역장성중에 YS정부가 신뢰할 만한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때문에 상대방이 미처 대처할 만한 여유를 갖기전에 전격적으로 「작전하듯」 인사를 단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출범초기에 「전광석화」처럼 주요 포스트를 경질하고 구시대 인맥을 정비했기에 하나회제거라는 엄청난 작업이 가능했던 겁니다. 특히 취임 5개월도 안돼 발생한 이충석(李忠錫) 당시 합참 작전부장의 「합참회식사건」때의 경우 가장 신경을 쓴 것이 「하나회측의 조직적 반발여부」를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살얼음판을 딛고 가는 형국이었던 거죠』
문민정부 신실세들의 이같은 주장에 「거세된」하나회측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문제는 사조직척결등을 내세운 초기의 군개혁에 성원을 아끼지 않던 일반군인들이 정권후반기로 들어서면서 수뇌부의 전횡에 점차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회식사건으로 옷을 벗은 예비역 이충석장군의 말. 『YS정권 출범후 하나회를 제거하자 또 다른 정치군인들이 생겨났습니다. 장군들 뿐아니라 영관장교들까지 정치권, 특히 PK 실세라인에 줄을 대 승진과 보직운동을 하는 데 혈안이 돼버렸습니다. 물론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각군총장등 군수뇌부가 정치의 시녀노롯을 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을 겁니다. 특히 일부 유능한 하나회장군들이 배제돼 생긴 빈 자리에 전문성도 없는 장군들이 배치된 결과, 군의 기강과 상사에 대한 존경심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또 진급비리와 율곡비리수사를 진행하며 군이 각종 비리의 온상인양 비쳐지게 만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군의 사기는 곤두박질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군사전략과 전술의 노하우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닌데도 YS는 하나회를 무조건 배제해 군전력을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역시 하나회핵심으로 수도권 군단장을 하다 옷을 벗은 예비역 C장군의 평가.
『YS가 주창한 「문민정부」란 말에 대해 당시 대다수 군인들이 말은 안했을따름이지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엄밀히 말해 군사정권은 5·16직후부터 박정희장군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직전까지만을 의미하는데도 군인출신들이 집권한 6공까지를 싸잡아서 평가절하한 결과 나온 말이 문민정부란 표현아닙니까. 그런식으로 말하면 프랑스의 드골정권이나 미국의 아이젠하워정권도 군사정권이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됐든 국민이 그런 정부를 선택한 결과를 우리군인들은 겸허히 받들 태세가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YS는 같은 하나회라도 옥석을 제대로 가리지 않은 채 모두 한 통속으로 보고 철저히 솎아내려고 했습니다. 하나회중에서도 육사32기이하의 영관장교들은 본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선배들의 낙점에 의해 회원이 된 경우가 대부분인데도 전부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처음 한번만 인사상 불이익을 준다고 했으나 정권내내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하나회원들의 이같은 지적에 대해 일부 중립적인 장교들도 상당수가 공감하고 있다는게 군내부의 전언이다.
하나회 명단살포 사건 당시 명단에 포함됐었으나 수사과정에서 비회원임이 밝혀져 불이익을 면한 현역 L대령의 증언.
『저같은 경우 하나회원과 비하나회원의 경계를 넘나든 사람이므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말할 수 있습니다. YS의 하나회숙정은 일단 대단히 잘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소위 PK군맥, K2(경복고출신)군맥, 현철군맥등 또 다른 형태의 이너서클 비슷한 것이 생겨난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봅니다. 특히 신실세군맥에 줄을 댄 장군들중에는 함량미달인 경우가 적지않아 사조직척결이라는 대의명분에 흠결을 낸 측면도 많았습니다. 이와 달리 연합사부사령관을 지낸 K장군처럼 전문성도 있고 후배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데도 하나회원이란 「천형」때문에 옷을 벗은 안타까운 사례도 있었죠. 또한 하나회원도 아닌데 단지 이들과 친하게 지냈거나 이들 밑에서 잘나갔다는 이유만으로 승진에서 누락된 경우, 예를들면 이진삼(李鎭三) 육참총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탓에 親(친)하나회로 몰려 번번히 진급에서 누락된 육사23기의 K장군 같은 사례가 잇달아 생기자 「해도 너무하는게 아니냐」는 분위기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정치군인들의 사조직을 발본색원함으로써 우리군이 건강한 군대로 거듭나게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구악을 신악으로 대체했을 따름」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는 YS의 군개혁. 역사는 이 일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 이제 문민정부 군개혁 5년역사도 과거의 일이 돼버렸으나 이를 뒤이은 DJ정부가 이 과정에서의 빛과 그림자를 냉정하게 평가해 「반면교사」로 삼아야한다는게 일반군인들의 지적이다.<윤승용·유성식 기자>윤승용·유성식>
◎새로운 私조직 존재했나/만나회·나눔회 등 소문무성/“9·9인맥문민실세 접목/YS군부 좌지우지” 說
지난해 12월 대통령선거가 한창일때 정치권과 군주변에는 「만나회」 「나눔회」등으로 불리는 군내 사조직에 관한 유인물이 나돌았다. 이 유인물은 곧바로 박빙의 선두다툼을 벌이던 김대중(金大中) 후보진영과 이회창(李會昌) 후보진영에 은밀히 전해진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대략 서너종으로 알려진 이 유인물은 6공초기 노태우 대통령 계열의 이른바 9·9인맥이 하나회에 대응하기위해 「만나회」란 사조직을 결성해 활동하다 YS정부들어 육사30기 이하의 또 다른 사조직 「나눔회」를 흡수, 세력을 확장해가며 YS정권의 군부를 좌지우지했다는 내용과 각 기수별 명단 및 그룹별 인맥관계, 인사비리 등을 담고있었다. 당시 사조직 실재여부를 조사했던 기무부대 P장군의 증언. 『만나회니 나눔회니 하는 사조직문제는 그때 처음 제기된 것이 아닙니다. 94년에 처음 명단이 나돈 이후 이미 대여섯번째 약간씩 내용이 다른 문건이 나돌았습니다. 그때마다 군에서는 각종 채널을 활용해 실체파악에 나섰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아마도 YS정부 들어 수세에 몰린 하나회측, 특히 장군진급을 눈앞에 두고있는 육사30기와 31기가 주축이 된 세력이 모종의 저의를 갖고 조직적으로 제작, 살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하나회핵심이었던 예비역K소장의 말. 『만나회등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국방부의 조사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입니다. 당장 새정부의 육군수뇌부와 기무부대의 핵심 등이 회원명단에 들어있는데 어떻게 제대로 조사를 한다는 것입니까. 노태우정권시절의 9·9인맥을 중심으로 결성된 후 문민정부들어 PK출신과 K2계열등을 보강하고 30기이하의 나눔회를 접목, 명실상부한 실세그룹으로 부상한 만나회는 이제 또 다른 가면을 쓰고 DJ정권에서도 실세역할을 하려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군을 새롭게 바로세우기위해서라도 이 조직의 실체를 밝혀 뿌리를 뽑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회를 대체한 또 다른 사조직은 과연 실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제 DJ정부로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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