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지방선거를 준비하면서 95년 6·27 지방선거때의 신문철을 뒤적이다 보니 「지역 등권주의(等權主義)」논란으로 여야가 첨예한 각(角)을 세웠던 당시가 생각났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아태재단이사장 시절 제기한 이 화두는 『TK니, PK니 하는 영남권 세력이 나머지 지역위에 군림하는 지역패권주의를 청산하고 4-5개로 분할된 지역이 권력을 균점하자』는게 골자. 이에대해 당시 여권은 『지역할거주의를 미화하고 또다른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궤변』이라고 몰아쳤지만 어쨌거나 야당은 이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비록 여야의 입장이 뒤바뀌긴 했지만 이번 지방선거의 주제어도 단연 「지역주의」이다. 김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취임후 첫 지방나들이한 대구에서 동서화합을 강조하며 『영남권의 인재를 중용할테니 이번엔 도와달라』고 주문하면 한나라당은 당장 「영남흔들기」로 해석한다. 박찬종(朴燦鍾) 전의원이 서울시장 출마를 포기하면 국민회의는 당장 『반DJP 전선을 강화하려는 모종의 묵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하지만 이런 정도는 애교다. 이미 알려졌듯 모든 당의 선거전략은 유권자의 본적, 나아가 원적(原籍)분석을 알파이자 오메가로 삼는다. 중앙당은 물론 기초단체장 공천에서 지배적 권한을 가진 지구당위원장들을 만나면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지역의 호남·충청권 인구는…』으로 시작한다. 지역 편중인사등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도 결국 자기쪽 「지역의 벽」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상대쪽 「지역의 벽」에 구멍을 내고자하는 것일 뿐이다.
현 정부 출범때 PC통신등에 표현된 여론은 『영남의 「기득권」과 호남의 「역기득권」을 모두 포기하고 진짜 국민화합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김대통령은 호남에 눈도 돌리지 말라』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세태는 『전라도엔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니 경상도엔 자루만 갖다놔도 찍어야된다』는 고함앞에 무력하기만 하다. 「대마불사」의 신화가 깨지고 「여당불패」의 전설이 무너졌는데도 「지역지존(至尊)」의 유령은 정녕 떨칠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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