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폭군 칼뱅과 루터의 광신에 저항한 카스텔리오·에라스무스 등 ‘위대한 패배자’ 되살려내1935년 5월24일 제네바의 칼뱅파 목사 장 쇼레는 오스트리아 출신 독일소설가 슈테판 츠바이크에게 편지를 보낸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그 시대에 천재적인 종교개혁가 칼뱅에 대해 가장 지적이고 가장 용감한 반대자였던 저 위대한 투사 제바스티안 카스텔리오를 불러내는 것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16세기에 그토록 지적인 대담성을 가지고 제네바 종교개혁가들이 신정(神政)국가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사용했던 비인간적인 수단에 맞서 싸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같은 해 6월 3일 츠바이크는 이렇게 답했다. 『당신이 말씀하신 것은 개별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온 세상의 폭군은 모두 개인의 양심을 침묵시키기 위해 열을 올립니다. 나는 이제 그러한 억압이 종교와 예술의 영역까지 침범해들어오는 거대한 위협을 느낍니다. 오늘날 내게 고귀하게 여겨지는 투쟁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즉 양심의 자유를 위한 투쟁이죠. 나는 에라스무스를 상징으로 삼아 이 문제를 제기하려 했습니다』
두 편지는 당시 독일이 히틀러의 나치독재가 견고해지면서 유대인은 물론 지식인과 예술가에 대한 탄압까지 본격화한 시점이라는 배경을 놓고 읽으면 의미가 보다 확연하게 다가온다.
츠바이크(1881∼1942)는 16세기 전반 유럽에서 활동한 에라스무스와 카스텔리오를 통해 이념과 이상의 고귀한 이름으로 가해지는 모든 폭압에 저항하는 위대한 패배자의 모습을 그려낸다. 「폭력에 대항한 양심칼뱅에 맞선 카스텔리오」(안인희 옮김·8,000원)에서는 은밀한 속삭임까지 통제하는 신정국가를 건설한 정신적 폭군 칼뱅에 외롭게 맞서는 카스텔리오를, 「에라스무스위대한 인문주의자의 승리와 비극」(정민영 옮김·7,000원)에서는 가톨릭의 이단박멸과 종교개혁가 루터의 광신을 똑같이 비판하면서 관용의 정신을 역설하는 에라스무스를 되살려냈다.
두 전기소설은 1930년대 독일에서는 출간 즉시 불태워졌지만 국제통화기금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그 위안은 결코 얻기 쉽지 않지만 일단 찾아내면 미쳐가는 세상에서 희한하게도 제 정신을 가진 또 하나의 나를 만나는 기분이다. 얻기 쉽지 않은 이유는 모든 억압의 정체를 이성적인 방식으로 냉철히 인식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공과 함께 하는 그 과정은 때로 가슴 아프기도 하고 때로 힘이 솟기도 한다.
츠바이크 자신이 주인공들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 그는 작품으로 나치에 항거하다 1934년 영국으로 망명, 이후 다시 브라질로 갔다. 그러나 오랜 방랑생활의 고달픔을 이기지 못하고 거기서 아내와 함께 자살했다. 앙드레 모루아 등과 함께 20세기 3대 전기작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마젤란불멸의 탐험가」 「스코틀랜드의 여왕 1·2메리 스튜어트」 「광기와 우연의 역사」등 그의 전기소설 5종이 최근 자작나무에서 완간됐다.<이광일 기자>이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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