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진출기업 지원활동 주력”/경제상황 수교때와 달라 양국관계 이젠 재정립할때/육아시설 등 적극확충 통해 여성 사회진출 정부서 도와야지난 달 30일 임명장을 받은 이인호(李仁浩·62) 주러시아대사가 6일 임지로 떠난다. 재외공관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달 17일 귀국한 이대사는 96년 우리나라의 첫 여성대사로 핀란드에서 외교활동을 시작했다. 여성대사로서의 경험과 앞으로의 포부를 들어본다.
-지난 2년동안 핀란드대사로 활동하셨지요.
『첫 부임지였던 핀란드는 국민소득이 2만달러로 선진국이어서 근무하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우리나라와의 교역량이 9억1,600만달러(97년)로 세계에서 41번째, 유럽연합국가 15개국중 10번째로 그다지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냉전시대가 종식되고 핀란드가 경제중심의 실리외교를 펼치면서 우리나라와 교류가 점점 늘고 있어 대사로서 뿌듯함을 느낍니다. 특히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한 국가라 여성대사로 우리나라의 인상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봅니다』
-핀란드여성들의 사회 기여도는 어떻습니까.
『유럽지역은 다 그렇지만 핀란드의 여성들은 사회진출이 아주 활발합니다. 우오수카이넨 국회의장, 화이나 국방장관, 할로넨 외무장관등 각료중 8명이 여성이고 헬싱키시장 시토넨씨도 여성입니다. 국회의원 중에는 35% 가량이 여성들입니다. 시토넨시장은 94년 대통령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을 정돕니다. 특히 이채로웠던 것은 여성정치인들이 거의 모두 가정을 가진 기혼자라는 점입니다. 여성들이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육아시설등 사회체계가 확실하다는 증거이지요. 또 핀란드에서는 저를 비롯해 일본등 10여개국 대사가 여성이었습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재직시 전공이 러시아사였습니다. 전공국가에 외교관으로 가시는 소감이 남다르겠습니다.
『96년 학교를 떠날 때 30여년간 공부해온 전공을 떠난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는데 이제 배우고 연구했던 이론을 활용할 장이 생겨 아주 기쁩니다. 또 역사학자로 현장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무한한 행복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경제사정이 90년 러시아와 수교할 때보다 어려워져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수교 당시 우리나라 경제가 활황이었고 러시아가 북한에 가진 영향력이 상당했다면 8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달라져 양국관계가 재정립돼야 한다고 봅니다』
-무엇에 역점을 두고 외교활동을 하실 계획입니까.
『임명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체적인 것은 말씀드리기 힘듭니다. 대략적인 방향을 말씀드리자면 우선 경제교류 활동에 주력할 생각입니다. 러시아에 진출해 있는 우리나라 기업의 애로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정부 지원방법에 대해 고민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문화기관 대학등에서 강연해 한국을 더 널리 알리는 것도 대사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문화의 날」같은 문화행사를 여는 것이 욕심이지만 우리 경제가 좋지 않아 아쉽습니다』
-직업외교관이 아니신데, 대학사회와 외교가의 차이점 때문에 고생하지는 않으셨나요.
『저는 개인이나 국가관계가 서로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가지면 원만하다는데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에서 교수로 오래 봉직한 것이 외교가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러시아대사관은 공관직원들이 40명이나 되는 대식구여서 그 곳이 조직생활을 배우는 「진짜 전쟁터」라는 생각이 듭니다』
-외교관의 길을 걷고 싶어 하는 여성후배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저는 직업의식이 강하지 않던 시대에 태어난 구세대입니다. 러시아역사를 공부하게 된 것도 목적의식보다 역사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고 제가 공부하던 냉전시대에는 러시아라는 전공이 활용 불가능해 보이는 「막다른 골목」이었지요. 맡은 일을 성실히 하는 것이 유일한 요령이었습니다. 목적의식보다는 배움에 대한 사랑이 궁극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더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노향란 문화과학부 기자>노향란>
◇약력
·1936년 서울 출생
·60년 미국 웨슬리대 졸업
·67년 미국 하버드대 박사
·67∼96년 미국 컬럼비아대 고려대 서울대교수
·96년 주핀란드대사
·98년 주러시아대사
·저서 「지식인과 역사의식」「러시아지성사연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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