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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어린이날/고병헌 성공회대 교수(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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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어린이날/고병헌 성공회대 교수(1000자 춘추)

입력
1998.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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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이다. 그동안 보여주진 못했지만 「사실 우리는 평소에도 이렇게 해주고 싶을 만큼 너희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상기시켜주는 연례의식의 날이라서 그런지 아이들과 젊은 부모들의 마음이 바쁘기만 하다.그런데 경험적으로 보면 오늘 같은 날에는 부모나 아이들 어느 쪽도 썩 유쾌한 기억을 만들지 못한다. 한 동료교수는 줄이은 휴일 나들이 차량에서는 화내는 부모, 꾸중들어 주눅든 아이들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놀이기구를 타는 아이들과 그 부모의 얼굴에서는 즐거움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 최근 우리들의 자화상이라고 지적한다. 맞는 말이다. 내 경우만 보더라도 아이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하루 갖게 해줄 심산으로 놀이동산에 가지만, 일단 비싼 돈 주고 「하루 이용권」을 사게 되면 그 순간부터는 무엇 하나를 타더라도 좋아서 타고, 또 그 순간을 충분히 즐기도록 배려해 주기 보다는 본전 뽑기 위해서 아이들이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동안 어느 줄이 짧은 지를 눈여겨 봤다가, 놀이기구에서 내리자마자 아이들의 손을 잡아채 또다른 놀이기구로 질주한 기억이 생생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아이들을 위한다면서 우리는 아이들이 어떤 기억을 만들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생각없는 선심은 아이들에게는 불쾌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놀이기구를 가급적 많이 타게 만들어 주면 다라고 생각하면서 과정은 어째도 개의치 않는 매우 혼란스러운 사고를 한다. 그래서 혼내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다.

참으로 즐겁고 의미있는 어린이날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아이들이 오늘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는, 하루동안 어디를 갔고 무엇을 먹었는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머지 364일의 경험이 결정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부모의 평소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 따라 똑같은 경험이라도 아이들의 느낌은 다르게 된다. 그래서 부모의 사치스러운 배려가 아니더라도 어려운 처지의 친구들과 함께 보낸 하루가 아이들에게는 더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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