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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사랑을 ‘내 울타리’너머로/강북구 녹색여성모임‘열린 숙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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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사랑을 ‘내 울타리’너머로/강북구 녹색여성모임‘열린 숙제방’

입력
1998.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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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 주부들 의기투합/방과후 돌봐 줄 사람없는 저소득층 초등생 모아 글쓰기·한자도 가르치고 숙제도 도와주고…남편 직장이 부도나는 바람에 지난 해부터 식당 주방에서 일하는 한기자(33·서울 강북구 수유3동)씨는 집에서 전화가 오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초등3년인 큰 아이와 1학년인 쌍둥이 아들 세 형제가 돌봐주는 사람도 없이 단칸방에서 놀다가 『깨진 창유리에 손을 벴다』 『점심을 못먹어 배가 고프다』고 하소연해오면 아이들 곁으로 달려가지도 못하고 애간장만 태우게 된다. 그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은 밤 10시. 놀다 지친 아이들은 땟국물이 흐르는 얼굴로 잠이 들었고 숙제가 걱정이 된 큰 아이는 잠꼬대를 하기도 한다. 학교성적이 좋을 리 없다. 받아쓰기를 0점 받아온 날 회초리를 들었더니 『엄마는 가르쳐주지도 않고』라며 울먹였다.

자녀들의 방과후가 큰 걱정인 한씨에게 최근 한시름 놓을 일이 생겼다. 서울 강북구 여성단체인 「녹색 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이 지난 1일 문을 연 「열린 숙제방」에 아이들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학교를 마치는 오후 1시부터 5시30분까지 여기에서 비슷한 또래 24명과 함께 숙제를 하고 글쓰기 종이접기 한자등을 배운다.

비용은 간식비 월 1만원과 재료비 5,000원. 자원봉사로 일하는 주부교사의 지도로 혼자서는 힘든 숙제를 하면서 아이들은 『평소 가고 싶었던 학원보다 더 좋다』고 입을 모은다. 집이나 학교에서 충분한 관심을 받아보지 못하던 이들을 주부교사들은 몇번이나 안아주고 이름을 불러준다.

「녹색여성모임」이 처음 숙제방을 구상한 것은 지난해 말. 이곳에서 운영하는 자녀교육강좌를 함께 듣던 회원들이 「내 아이만 잘 키울 것이 아니라 주변의 어려운 아이들도 함께 잘 키우자」란 생각을 나누면서부터이다. 자녀문제라면 물불을 안 가리는 이들이 「대문을 걸어잠그고 내 아이만 챙긴다고 아이가 바르게 자라지 않는다. 아이가 살아가는 학교 사회를 공평하고 사랑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주변에서 가장 어려운 아이들이 편부모가정이나 저소득층 맞벌이가정의 초등학교 자녀라는 것을 알게 됐다. 늦게까지 아이를 돌봐주는 어린이집과는 달리 초등학교는 오후 1∼2시면 수업이 끝나 아이들이 갈 곳이 없다. 이 모임의 회장 정외영(41)씨는 『초등학생인 딸의 학교에서 명예교사를 하다가 이런 아이들이 성적도 떨어지고 자긍심도 잃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숙제방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한다. 물론 마음만큼 쉽지는 않았다. 서울시로부터 어렵사리 700만원의 보조를 받았지만 사무실을 임대하고 학습교재를 마련하는데는 역부족이어서 일일찻집으로 300만원을 모았다. 『숙제방에 오고 싶어하는 아이들은 많지만 공간이 좁아 다 받아줄 수 없는 형편』이라는 정씨는 『방과후면 텅 비는 초등학교 시설을 이용, 민간단체들이 방과후 교실을 운영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덧붙인다.<김동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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