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국사정에 정통한 미상무부의 국장급 관리와 한국기업들과 거래가 많은 변호사가 워싱턴주재 한국특파원 몇명과 함께 점심을 같이 한 적이 있었다.법률회사와 컨설팅회사 등이 밀집한 워싱턴 중심가의 한 양식당에서 있은 이날 점심자리의 주화제는 한국의 경제사정이었다. 특히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국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개혁과 그에 대한 평가가 참석자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새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투자가의 신뢰도가 좀처럼 빨리 회복되지않고 있다는데 얘기가 모아질 즈음 상무부의 관리가 불쑥 『동양속담에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란 말이 있는데 한국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는 것같다』고 말을 꺼냈다.
그는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아직 임기가 남은 포항제철의 회장이 갑자기 교체되는 것을 이해할수 없었다』며 『한국언론에 보도된대로 집권당의 압력으로 바뀐 것이라면 정말 잘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장경제의 원칙에 충실한 방향으로 개혁을 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정치권이 그런 식으로까지 업계에 간섭을 하는 것을 보고 투자가들은 「아직 멀었다」고 말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번에는 변호사가 『한국 최대의 방송사 사장이 교체되는 것을 보니 한국에는 도대체 언론의 자유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아무리 국영기업체라지만 정치권력이 그토록 개입하는 것은 상식밖의 일』이라고 말을 받았다.
그는 『신문지면에는 거의 매일같이 한국정부의 개혁조치를 선전하는 기사가 나오고 있지만 이런 구체적인 사례가 바로 한국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것』이라며 『한국의 개혁은 신문이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을 때 국영기업체의 장(長)들이 새로운 인물로 바뀌곤 했던 것이 우리나라의 정치문화에서는 상식이 되어왔다. 그런데 외국인의 눈에는 바로 이같은 상식이 아직도 남아있는 「독재정권 시절의 유물」정도로 비춰지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