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가족 ‘마음의 문’ 열자/실직·부도 등 경제적 어려움 아이들 고민도 어른못지않아 진솔한 대화로 함께 풀어야서울 도봉구 창동의 주부 김모(37)씨는 중소기업 과장으로 근무하다 1월 회사부도로 실직한 남편 조모(40)씨의 「마음」을 잡기위해 자신의 성격마저 바꿨다. 조씨는 재취업을 시도했으나 잇따라 실패하자 연일 술을 마시는가 하면 툭하면 외박을 하고 우울 증세까지 보였다.
김씨는 처음에는 모든 것을 무능한 남편 탓으로 돌리며 원망했으나 결국 남편과 가정을 살릴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원래 내성적이었던 김씨는 이때부터 남편과 함께하는 술자리를 만들기도 하고 구청에서 무료로 실시하는 문화행사에 같이 참가했다. 또 취업관련 책을 남편에게 사주고 직업 알선기관을 함께 찾아다니며 고민을 공유하려 했다.
아내의 노력으로 조씨는 차츰 정상생활을 되찾았다. 조씨는 설거지 등 집안일까지 분담하겠다고 나섰다. 일정한 수입이 없어 생활은 여전히 힘들지만 예전의 단란한 가정의 분위기와 활력은 되찾았다.
실직이나 부도 등으로 인한 IMF형 갈등을 푸는 최선의 방법은 가족간의 대화뿐이다. 「아버지의 전화」 대표 정송(鄭松·44)씨는 『실직후 2, 3개월은 가족이 서로 위로하지만 그후에는 희망을 잃어가는 남편으로 인해 아내의 고통이 커지면서 부부의 결속력이 무너질 수 있다』며 『실직으로 무능해진 남편은 「가치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버리고 아내도 「저런 남편 만나 고생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당부한다.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을 지켜보는 아이들의 스트레스도 어른 못지 않다. 2월중순 모 회전의자 납품업체에서 해고당한 김모(47·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씨는 편지를 통해 자녀들과 대화의 물꼬를 텄다.
사실 김씨는 실직으로 인한 자괴감보다는 아버지의 무능력에 실망하는 자식들의 눈총이 더 고통스러웠다. 중학교 3학년인 아들(16)과 여고 1학년인 딸(17)은 눈에 띄게 말수가 줄었고 학교성적까지 급격히 떨어졌다. 김씨는 아내(45)와 논의한 끝에 편지를 쓰기로 했다. 『반드시 재기해 능력있는 아버지가 되겠다.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자』는 내용의 편지를 자녀들에게 전달한 지난달 29일 저녁. 김씨 가족은 조촐한 식탁을 사이에 두고 모두 모였다.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자녀들이 먼저 『IMF시대에 실직은 아버지 탓이 아닙니다. 힘내세요』라고 위로하며 『용돈을 절반으로 줄이겠다』 『쓸데없이 컴퓨터통신을 하지 않겠다』는 등 절약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아버지 김씨는 『재취업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전문가들은 아버지의 실직으로 자녀와 갈등이 생길 때는 아버지가 당당해지라고 충고한다. 부모의 실패담을 통해 자녀가 사회를 보는 안목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 대화의 광장」 김혜숙(金惠淑·40) 박사는 『가장의 심리적 혼란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지므로 따뜻한 말로 가족이 처한 상황을 진솔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이동준·이주훈 기자>이동준·이주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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