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일이 마침내 벌어졌다.지난 금요일 밤 격렬한 시위가 휩쓸고 지나간 서울도심의 모습은 참담했다. 거리를 메운 돌과 최루탄 파편, 깨진 보도블록과 공중전화 부스사이로 쓰레기처럼 날리는 유인물들…. 「모래시계」류(流)의 회상형 TV드라마에서나 보게되리라 생각했던 장면이 재현된데 대해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이날 과격시위의 당사자는 지리멸렬한 조직재건의 기회를 잡아보려는 소수의 한총련 학생들이었다는 것이 당국의 분석이다. 그러나 주체가 누구든 가뜩이나 어려운 나라형편을 더욱 악화시키는 폭력시위는 자제돼야하고 당사자는 단호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정부가 한편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일반시민의 반응이다. 인접상가주민이나 길 막힌 주변 차량통행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무심」하게 현장을 지켜보았던 것이다. 이전 한총련시위때와 같은 적극적인 비난과 질타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이건 좋지않은 조짐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잠재적인 시위동조자들이 급증할 수도 있다는 두려운 시사인 것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시위성격의 변질 가능성이다. 종전의 「이념형」시위가 「생계형」으로 바뀔 경우 그 절박성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날 시위에 대한 정부당국자들의 반응에는 불쾌함, 또는 서운함이 배어있다. 아마도 오랜 세월 공유했던 동료적 정서가 깨진데다 나름대로의 노력을 인정하고 기다려주지 못하는데 대한 실망감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국가운영은 현실이다. 「어리석은」 국민들은 논리나 명분보다도 피부에 와닿는 작은 이해에 더 민감한 법이다.
전 정권의 실정(失政)도 이제 보호막으로서의 기능을 급속히 상실해가고 있다. 이미 금반지와 달러까지 다 내다팔며 기다려온 국민들이다. 말뿐이 아닌 구체적인 변화의 조짐이라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어물어물하다가는 자칫 안팎으로 신용위기에 몰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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