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慧菴 조계종 원로회의장(한국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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慧菴 조계종 원로회의장(한국인터뷰)

입력
1998.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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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 버리고 마음속 자비 깨달아야”3일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경남 합천의 법보종찰(法寶宗刹) 해인사로 조계종 원로회의의장 혜암(慧菴)대종사를 찾았다. 일찍이 근기(根機)를 눈여겨본 성철(性徹)전 종정의 고임을 받았던 혜암스님은 성철스님 열반후 불교계의 큰 어른으로 94년 개혁종단 출범의 정신적 지주가 됐다. 가야산에 기대어 세상을 관조해온 스님을 만나 어려운 시대를 사는 지혜를 들었다.

-불기 2542년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이 본래 원만한 부처라는 진리를 알려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부처님을 여래(如來)라 한 까닭은 생사를 초월한 진리의 법신체이기 때문입니다. 낳고 죽음이 없는데 새롭게 무슨 탄생일이 있으리오만 부처님 오신날이 모든 이의 축제가 되려면 그 분이 대비구세(大悲救世)를 위해 오셨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절집에서는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사랑인 무연지비(無緣之悲)와 너와 나를 초월한 사랑인 이자타비(離自他悲)를 합쳐서 대비라고 부릅니다. 부처님은 바로 대비를 실천하신 분입니다』

◎頭頭物物, 만물이 곧 부처/마음 고쳐먹으면 극락인데 중생들 物慾에만 집착

-부처님 탄생의 의미가 날로 퇴색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어디에 계신가요.

『많은 사람이 부처님의 육신의 탄생만 축하할 줄 알지 정작 법신의 탄생의 의미는 모릅니다. 부처님 오신날이 오면 사람들은 종이등에 촛불을 켜는 것으로 등을 밝혔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착각입니다. 자기 마음 속에서 잠자고 있는 지혜와 자비의 의미를 깨달을 때 비로소 진리의 등을 밝히는 게 됩니다. 이런 의미를 깨닫지 못하니 탄생의 의미는 퇴색해지는 겁니다』. 스님은 이어 『두두물물(頭頭物物·모든 존재의 실상이 부처)이거늘 어디서 따로 부처를 찾겠는가』라는 말로 질문의 뒷부분에 대한 답을 대신했다.

-과연 부처님처럼 자유로운 삶을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부처님 오신날은 자유의 날입니다. 생사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스러운 날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을 갖고 있어요. 하다 못해 길가의 풀 한 포기, 돌멩이 한 개에도 불성이 있거든. 그런데 부처나 조사에 얽매이다 보니 자기 자신이 부처인 줄 미처 깨닫지 못합니다. 부처님은 사는 자리가 모든 사람마다 갖춰 있음을 보이시고 그 실상을 진리의 몸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해탈을 이루셨느냐』는 물음에 스님은 『(해탈을)했다고 해도 우습고 안했다고 해도 우습지만 그런 말은 먹물옷을 입은 이들이 법거래(법담을 나누는 일)나 할 때 하는 것』이라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은 욕망의 노예가 돼 가고 있습니다. 사회는 타락하고 지옥이 따로 없는 세상입니다. 무엇이 원인이겠습니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내면에 어둠의 존재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무명(無明)이라고 하지요. 무명의 본질은 탐(貪) 진(瞋) 치(癡) 삼독(三毒)에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을 갖거나 차지하고 싶은 탐심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할 때는 분노하게 됩니다. 분노는 어리석음에서 나옵니다. 탐욕은 육체가 있음으로 비롯되지요. 삼독의 노예가 되면 그 자리가 지옥이며, 한 마음 고쳐 먹으면 서 있는 자리가 극락인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지금 세상은 많은 사람이 탐진치를 안고 지옥으로 달려가는 형국입니다』

-국민은 더 나은 삶을 기대하다 갑자기 닥친 경제난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실업자는 넘쳐나고 생활고 때문에 목숨을 끊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수입이 급감하는데서 오는 정신적 허탈감이 클 것입니다. 생활고를 극복못해 자살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평범한 진리가 있습니다. 진실한 행복과 삶의 의미는 정신적 풍요에 달려 있거든요. 물질적 풍요를 잃었다고 해서 인간의 고귀한 존엄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소비해온 것을 반으로 줄이고 소유욕도 반만 갖는다면 두려울 게 없습니다』

-정권마다 개혁을 외쳐왔지만 성과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작 위정자들이 자신의 개혁을 외면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개혁은 국민의 공감대가 이뤄져야 성공할 수 있는데 위정자도 사심을 갖고 있으니 개혁의 당위성이 국민에게 먹히지 않지요. 그리고 모든 것을 한 번에 이루려고 하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어느 시대고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개혁의 성공은 사람을 상처내지 말고 오히려 사람을 위로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혁범성성(革凡成聖)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개혁은 욕망의 노예가 되고 있는 범부를 고쳐서 성인을 이루게 하듯이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소유욕심 반만 줄이면 이세상 두려울것 없어 정치인 민심 읽는눈 가져야

-정치인·공직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지요.

『정치인이나 공직자는 천수천안(千手千眼)을 가져야 합니다. 올바른 소리를 듣는 귀와 민심의 소재를 파악하는 눈이 천수천안이라 할 수 있지요. 관세음보살은 천수천안으로 중생의 고통을 보고 듣고 원하는 바를 해결해주셨습니다. 귀는 스스로 막고 눈은 측근에게로 돌리는 위정자는 민심의 외면을 삽니다.그리고 지도층일수록 자기를 낮추는 하심(下心)이 필요합니다』

-불교는 무소유의 종교인데, 정말 가난해도 올바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죽을 때 자기 육신조차 못 갖고 가는 것이 인간일진대 세상에 자기 것이 있을까…. 남에게 베풀고 나눠줄 때 비로소 삶이 자유로워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지요. 출가자들은 일의일발(一衣一鉢)로 살면서도 우주법계를 소유한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부처님 오신날 하루만이라도 빈자일등(貧者一燈)의 정신이 아쉽습니다. 자기의 등만 밝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일체중생이 부처로 태어나도록 노력하는 가운데서 세상은 밝고 맑아집니다. 부처님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 이웃의 마음 속에 계십니다. 무소유로 마음을 비울 때 보다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고통의 분담이 절실한 때가 없는 것 같습니다. 고통의 분담은 멀리 있지 않아요. 이웃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만 있어도 고통의 분담을 실천하는 것이 됩니다』

-오늘날 스님들은 너무 잘 사는 게 아닌가요. 이 점은 타종교인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옛 조사(祖師)들은 일미칠근(一米七斤)의 자세로 살았습니다. 쌀 한 톨의 무게가 일곱근이나 된다고 했는데 쌀 한 톨이 입에 들어오기까지 농민들이 흘린 피와 땀을 생각하라는 가르침이지요. 그렇게 살면서도 고통받는 중생에게 깨달음의 즐거움을 환원하려고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이기창 문화과학부 차장>

□공직자를 위한 게송·좌우명

■게 송

낙중유고일휴문(樂中有苦一休門)

개개와쟁정저존(箇箇蛙爭井底尊)

주야재심원피각(晝夜在心元皮脚)

시비인아일생훤(是非人我一生喧)

(즐거움 가운데 고통을 쉬어가는 문이 있건만/저마다 잘났다고 우물속 개구리처럼 다투네 / 밤낮으로 제 욕심 채울 생각에 / 서로 옳다고 시비하니 평생 시끄러울 뿐이네)

■좌우명

사번막구(事繁莫懼)

무사막심(無事莫尋)

시비막변(是非莫辨)

(일 많은 것을 두려워 말고 / 일없는 것을 찾지 말며 / 시비를 가리되 안으로는 무심하라)

□혜암스님 행장

·1920년 전남 장흥 출생

·46년 합천 해인사에서 출가

·47년 문경 봉암사에서 성철, 청담스 님등과 4년 결사안거

·48년 비구계 수계

·49년 보살계 수계

·83년 해인총림수좌

·85∼93년 해인총림 부방장

·93∼96년 해인총림 방장

·94년∼현재 조계종 원로회의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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