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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를 보는 눈(金聖佑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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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를 보는 눈(金聖佑 에세이)

입력
1998.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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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취임한 장관등 고위공직자의 재산이 등록되고 등록재산이 공개되면 국민들의 관심은 온통 그 액수에 쏠린다. 대개는 못마땅한 눈초리들로 손가락질이 시작된다. 기대 이하의 빈부(貧夫)들만 면죄되고 대부분 입방아의 단죄를 당한다. 멀쩡하던 사람도 이 재산공개 하나 때문에 멍이 든다.재산을 등록해야 하는 고위 공직자나 공직후보자들도 이런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에 성실한 신고가 망설여진다. 가능하면 편법을 써서라도 몇꼭지는 슬쩍 감추려고 한다. 그러다가 가끔 들키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국민들로서는 들키지 않는 것이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공개된 액수에 불신액까지 보태서 경악한다.

재산등록과 공개는 이렇게 공직 담임자와 공직을 맡기는 국민간의 거리감을 심화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재산등록과 공개를 안할 수도 없다.

이런 시선대 시선의 충돌을 어떻게 해야할까.

공직자윤리법이 재산등록과 공개를 의무화하도록 규정한 것은 공직자의 재산정도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떤 공직에 취임하는 사람이 가난뱅이인지 부자인지 국민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까닭도 없다. 어느나라에서나 남의 재산을 묻는 것은 실례다. 실례를 무릅쓰고 전재산을 까발리라고 법이 요구하는 까닭은 순전히 취임할 때와 퇴임할 때의 재산 차이를 비교하기 위해서다. 공직에 있는 동안 공직을 이용해 부정하게 재산 증식을 한 것이 없는지를 따지고 또 그것을 미리 방지해 공무집행의 공정성을 확보하자는 것이 취지다. 그러자니 자연히 재산실태가 드러나지 않을 수 없을 뿐이다.

공직자는 취임때 재산등록을 하고나면 매년 변동사항을 신고하도록 되어있고 퇴직한 때에는 1개월내에 나머지 변동사항을 등록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퇴직공직자의 재산이 취임때와 비교하여 명료하게 공개된 기억이 별로 없다. 공개되었더라도 그만큼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러고보면 재산공개는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결국 부자냐 아니냐의 재산 키재기에 그치고 국민들은 자기 재산과 견주는데 재미를 붙이는 감이 있다.

공직자의 부(富)를 바라보는 눈만해도 그렇다.

공직자는 부자면 안되는가. 꼭 가난뱅이라야 하는가. 더러는 유산도 있고 가업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일반국민들은 「정당하게 번 돈이야 상관없지만」이라는 단서를 빠뜨리지않고 붙이면서도 그것이 다 정당하게 번 돈이 아닌 것으로 무조건 불신하려고 한다.

우리나라가 이만큼한 경제입국이 되기까지의 과정에는 사실 불법과 편법의 치부들이 많았다. 그때문에 누가 돈을 벌면 그저 정당하지 않은 돈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그러나 그 인식에는 타성같은 것도 있다. 가령 재산공개에서 언제나 가장 말썽이 되는 것이 투기다. 탈법이나 변칙투기는 물론 안되지만 투기라면 변칙여부를 가리지 않고 무턱 패도(悖道)로 단정해버린다. 당당한 투기가 부끄러울 까닭이 없다. 오늘의 우리사회에 이만큼 두꺼워진 중산층은 크든 작든 저마다의 투기의 성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부터 부(富)는 뭇사람의 원망의 대상(富者衆之怨)이라했다. 한 집의 부귀는 천 집의 원한(一家富貴千家怨)이라는 말도 있다. 나는 부자이고 싶고 남은 부자여서는 안된다. 아직도 이런 질시로 남의 재산을 흘겨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는 가난이 반드시 미덕이 아니듯이 부는 반드시 악덕이 아니다.

「국부론」으로 유명한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의 이론」이란 책에서 인간생활의 수단인 부는 그것을 찾아 경쟁하는 사이 부를 획득하는 것 자체가 목적으로 전화(轉化)하게 되는데 이 전화를 자연이 인간을 기만하는 것이라 보고 이 기만의 유용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인류의 근면을 북돋우고 계속 운동시키는 것이 이 기만이다. 토지를 경작하고 가옥을 건축하고 도시를 건설하고 인간생활을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하는 과학과 기술을 발명시킨 것도 이 기만이다.』

부를 추구하는 힘은 인간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라는 말이다.

부자를 모두 사시(斜視)의 눈으로 본다면 누가 부자이고 싶겠는가. 아무도 부자가 안되겠다고 하면 세상은 어떻게 되겠는가. 무슨 성취동기로 개개인을 분발시켜 국부(國富)를 쌓을 것인가. 우리는 위화감이란 이름으로 서민과의 격차를 줄여 부의 기준을 끌어내리려 한다. 우리는 성취감이란 이름으로 서민들이 본받을 수 있게 부의 기준을 끌어 올려야 한다. 부자가 당당히 스스로 부자라고 자랑할 수 있는 나라, 그런 부자를 당당히 존경할 수 있는 나라, 이런 나라가 잘 사는 우리나라다.<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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