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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떠나는 실직가장들(가정을 되살리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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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떠나는 실직가장들(가정을 되살리자:1)

입력
1998.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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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 찾아주세요”/“일자리 구한다” 가정파탄 속출/시민단체선 ‘新이산가족찾기’/가정없인 재기 무의미 깨닫길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IMF체제 이후 가장의 실직과 가출, 자살 등으로 우리사회의 밑동인 가정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가정의 위기를 이기는 힘은 가족 공동체의 사랑 뿐이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정을 복원하고 가족의 가치를 일깨우기 위해 「가정을 되살리자」시리즈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주>

『두 밤만 자고나면 아빠가 아이스크림 사온댔는데…』

두달전 언니 미현이(6)와 함께 서울 용산구 후암동 보육원에 맡겨진 네살배기 미정이는 아직도 아빠가 멀리 출장간 줄로만 알고있다. 하루종일 창가에 턱을 괴고앉아 밖을 바라보며 아빠를 기다린다. 친구들이 놀자고해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미현이 자매는 지난주 선생님을 보채 서울역과 장충단공원 등 실직자들이 모여있는 곳을 한바퀴 돌았으나 아빠를 찾지 못하자 가출인 신고센터인 서울경찰청 「182센터」에 가서 『우리 아빠를 찾아주세요』라고 떼를 쓰며 울었다.

단란했던 미현이네 가정은 지난해말 IMF체제로 아빠 진모(33)씨가 다니던 봉제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함께 무너졌다. 2월초 아빠가 『일자리를 구하겠다』며 집을 나간뒤 소식이 끊겼고 한달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엄마(29)마저 『시장에 간다』며 곁을 떠났다. 졸지에 아이들을 떠안게 된 할머니도 어쩔수 없어 눈물을 뿌리며 미현이 자매를 보육원에 맡겼다.

실직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집을 나가는 가장과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 서울시내 파출소와 경찰서 시민단체 등에는 요즘 남편과 아빠를 찾는 「신(新) 이산가족찾기」의 애닯은 행렬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서울경찰청 182센터에는 집나간 아빠를 찾아달라는 전화가 하루 평균 10여통에 이르고 경찰서 소년계마다 실직가장을 찾는 신고가 7∼8건씩 접수된다.

29일 밤 182센터에 전화를 한 울산의 주부 정모(42)씨의 남편도 올해 초 건설회사에서 실직한 뒤 한달전 「미안하오, 1년뒤에 돌아오겠소」라는 편지 한장만 베갯머리에 남기고 떠나버렸다. 정씨는 『얼마전 밤에 걸려온 전화에서 아무말이 없어 「당신 맞죠」했더니 한참을 흐느끼다 전화를 끊었다』며 『신문이나 TV에 자살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고 애를 태웠다.

30일 「아버지의 전화」(대표 정송)에 전화한 주부 민모(34)씨는 『남편이 차를 몰고 출근한 뒤 닷새째 돌아오지 않아 회사에 전화해보니 이미 2주일 전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했다』며 울먹였다. 『이해심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혼자 자책도 하고, 가끔 싫은 소리를 한 것이 후회되기도 한다』는 민씨는 『남편과 연락만 닿으면 「돈 없어도 좋으니 함께 살자」고 매달리겠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집계에 따르면 대도시 역과 지하도 등에서 노숙하는 사람은 2,000여명. 6월께면 「홈리스(homeless)족」이 3,0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조흥식(曺興植) 교수는 『집을 나온 실직가장이나 노숙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민간·종교단체 등 우리사회 전체가 각별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가출한 실직자들도 가족을 외면하거나 가정을 떠나서는 생활의 활력을 되찾을 수 없고 재출발도 의미가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충고했다.<김호섭·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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