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 아주 특이한, 또 한편으론 무척 씁쓸한 경험을 했다. 그날은 정말 오랜만에 맞는 한가한 날이어서 모처럼 친구와 백화점에 들렀다. 갑자기 호출기가 울리기에 들여다보니 휴대폰 번호가 찍혀 있었다. 휴대폰 저쪽에서 낯선 남자가 나왔다. 그는 자신이 누군지 밝히지도 않은채 계속 내이름을 물었다. 전화를 끊었다. 잠시후 음성메모가 들어왔다. 앞서 남자의 목소리였는데 험한 욕설이 이어졌다. 다시 그 휴대폰 전화가 찍혔길래 다시 전화를 했으나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황당하고 불쾌했다.몇분 간격으로 계속 호출기가 울렸는데 계속 같은 번호였다. 난 스케줄을 몽땅 포기하고 이동통신 본사로 갔다. 저간의 사정을 얘기하고 휴대폰의 주인을 알고싶다고 했다. 그곳에서는 고객보호 차원에서 알려줄 수 없다며 경찰에 신고하라고 했다.
난 잠시 갈등했다. 이렇게 난리를 피워야 하나. 그 사람이 내 호출기 번호를 알아낸 수고와 집념에 사뭇 감탄하기도 했지만 그에 비해 싱겁고 황당한 메모내용에 허탈하고 불쾌했다. 그러나 나 뿐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처럼 얼굴도 모른채 언어폭력에 시달린다고 생각하니 참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신고라는게 그리 간단한게 아니었다. 정작 진술서를 쓰기까지 같은 내용의 얘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했고 짬짬이 경찰아저씨와 전경동생들에게 사인까지 해주느라 정말 법석이었다. 나중에는 사소한 일로 바쁜 아저씨들을 너무 귀찮게 하는게 아닐까, 혹은 내가 너무 경솔했던게 아닌가 싶어 우울해지기도 했다. 담당 형사아저씨가 『참 신고 잘했어요』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그나마 힘을 얻었다. 그렇게 두시간 시달리며 진술서를 쓰고 나니 어느덧 저녁해가 지고 있었다.
촬영 때문이 아니고는 처음 가본 경찰서. 피해를 당하고도 신고를 하기까지는 큰 결심과 노력이 필요했다. 길다고도 볼 수 없는 그 몇 시간 동안 나는 정말로 여러가지 생각을 했고 갈등을 겪었다. 사소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결론은 「신고하길 잘했다」였다. 민주시민이 되기 정말 어렵구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