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중소기업 부도사태는 경기침체에 따른 영업부진과 신용경색이 주된 원인이지만 어음제도라는 우리나라 특유의 금융관행에도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은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물건을 납품한뒤 받는 결제대금을 현금이 아닌 어음으로 받는다는 것 자체가 중소기업으로서는 엄청난 자금압박요인이 된다. 그나마 대기업도 줄줄이 좌초하는 마당에 받을 어음이 언제 부도날지 불안하고, 어음결제일은 법정기일 60일을 넘기는 횡포가 보통인데, 은행은 자금경색을 이유로 어음 할인마저 기피하고 있다. 그러나 거래선 확보 유지에 생존이 걸린 중소기업들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어음거래를 강요하는 대기업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 힘없는 중소기업에 자금난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 직속의 중소기업특별위원회가 발족 첫날 회의에서부터 어음제도 개선안을 제기한 것은 당연한 문제인식이다. 김대중대통령도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는 지금까지 기간에 관계없이 연 12.5%였던 어음할인료를 법정기일 초과 30일까지는 17%,그 이상은 19%로 높이기로 했다. 어음결제일을 늦춰 자금부담을 전가하는 대기업의 횡포를 견제한다는 취지이다.
중소제조업체의 경우 대금결제중 어음거래비중이 종래 50%대에서 외환위기 직후인 작년 12월에는 80%, 금년 1월에는 84.6%까지 치솟았다. 발행어음의 지급만기일도 하도급법상의 규정인 60일은 말할 것도 없고 90일을 넘기는 경우가 60%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가 협력 보완관계가 아니라 종속 예속관계라는데 있다. 납품선을 잃으면 판로가 막히고 당장 기업생존이 어려워지는 취약점을 안고 있는 게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한계이다.
정부의 어음거래대책 실효성에 처음부터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동안에도 어음할인료를 제대로 지급안해 공정거래위의 시정명령을 받은 대기업이 할인료는 커녕 세금계산서만을 요구해도 이를 거절할 배짱있는 중소기업은 없었다. 늑장결제에 할인료를 올려봤자 어음대신 외상거래를 요구하거나 납품단가를 후려치는등 편법을 동원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약자에게만 부담이 전가되는 현행 어음제도는 보다 과감하게 수술해야 한다. 어음거래에 따른 불공정 횡포뿐 아니라 부도를 예방하기위한 최소한의 안전판과 이를 통한 원활한 유통등 보완해야 할 과제가 많다. 어음제도를 일시에 폐지하는게 어렵다면 공정하고 원활한 유통이 보장되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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