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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세번째 창작집 ‘유리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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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세번째 창작집 ‘유리구두’

입력
1998.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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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희망으로 추억하는 80년대 젊음의 송가/왜 아직도 80년대인가/20대의 열정과 순결을 온전히 담아낸 시대였기에…/숨차고 고통스럽게 달려온 30대의 언덕바지에 앉아 이젠 새 창을 열으련다어떤 희망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보는 이들이 있다. 또는 어떤 절망에 의해 자신의 모든 것이 결정돼 버리는 이들도 많다. 소설가 김인숙(35)씨에게는 80년대라는 우리 현대사의 특정한 연대가 그 희망과 절망의 뿌리이다. 김씨가 5년만에 중·단편 9편을 묶어 세번째 창작집 「유리구두」(창작과비평사 발행)를 냈다. 80년대라는 언덕바지를, 90년대도 다 저물어가는 지금까지 숨차게 때로는 고통스럽게 올라와서 그 언덕바지에 걸터 앉아 내려가야 할 길과 다시 올라야 할 언덕을 그려보는 작품들이다.

「나는 그 때를 빼놓고는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 때가 내겐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자전으로 읽히는 「風磬(풍경)」에서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그는 왜 이렇게 80년대에 집착하는가. 김씨는 반문했다. 『80년대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거대희망과 거대열정의 시간이었지요. 옳고 그르고를 떠나 그렇게 전폭적으로 회의없는 믿음을 순결하게 가질 수 있는 시대가 다시 있겠어요』. 20대를 온전히 담아낸 순결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 시간이 애닯고 또 쉽게 몸을 뺄 수 없는 글쓰기의 원천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풍경」의 여주인공은 『글쓴다는 여자들 다 애정결핍증이야』라고 말하는 남편과 아이를 두고 홀로 지리산자락의 쌍계사로 떠난다. 지리산이라는 지명에서도 빨치산…등 한 시절의 초상을 떠올리던 그녀는 「지난 시절의 꿈이 흐려진 이후 남아 있는 단어들은 그 속뜻을 잃은채 자신의 생살만 찌르는 날 선 모서리」임을 깨닫는다. 겨울비 내리는 숙소에 웅크려 앉아 애꿎은 손톱만 물어 뜯으며 되돌아보는 「황금다리」에 대한 꿈을 가졌던 20대와 어린 시절, 그리고 수렁에 빠진 듯한 서른다섯 살의 지금. 그녀는 그러나 비가 그친 뒤 힘겹게 오른 계곡의 정상에서 바람소리를 듣는다 「걱정 말라고, 더 오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사람들은 누구나,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막상 그 제목을 붙인 소설 속에 풍경소리는 등장하지 않지만 「풍경」은 풍경소리같은 울림을 남기는, 젊음에 대한 송가이다. 「어느 날 아침 눈 떠보니 추억 밖의 세상에 던져진」 대기업 사원과 월간지 기자로 전신한 80년대의 남녀가 무의미한 육체관계에 빠지면서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는 표제작 「유리구두」도 같은 선상에 있다. 김씨의 작품집은 이외에도 가족의 의미를 묻는 「거울에 관한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스무살 나이에 화려하게 등단, 누구보다 세차게 젊음을 달려온 김씨는 이제 한 언덕에 다다른 것같다. 그는 『막상 내가 써놓은 글을 되돌아 읽을 때마다 스산한 느낌이 듭니다. 끊임없이 삶을 들여다 보아야 하는 것이 너무 악착같다는 생각도 들고…』라고 말했다. 하지만 「명쾌한 해답이 없더라도 계속 찾아 나서야 하는 것, 그것이 작가의 길」이기에 『창 밖의 꽃이 나를 참고 기다리기 전에 내가 먼저 창을 열고 나가겠다』는 것이다.<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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