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나라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건 정부나 기업이 아니다. 소출없이 구조조정이랍시고 진두지휘하고 있는 정부나, 개혁을 주도할 생각없이 그저 살아남기에만 집착하고 있는 기업이 경제의 버팀목이 아니라는 얘기다. 직장에서 쫓겨난 실직자들이, 무능한 가장(家長)이나 실패한 인생으로 치부되고 있는 실업자들이 정작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숨은 힘」이다. 우리가 200만명에 육박하는 실업자 덕에 살고 있음은 꼭 짚어야 할 역설적 사실이다.지금의 실업자들은 마치 타고 있던 배(한국 경제)가 환란태풍을 만나 막 침몰하려는 위기에 놓이자 배의 무게를 덜어주려고 바닷물 속으로 뛰어든 사람들로 비유할 수 있다. 물론 자발성보다는 강제성이 강하지만 이들의 투신으로 배는 그럭저럭 떠 있다. 30명이 탄 허름한 목선에서 침몰 직전 10명이 물속으로 뛰어들어 위기를 넘겼으면 배가 떠 있는 이유가 살아 있는 20명 탓인가, 죽어간 10명 덕인가.
이들은 게으름이나 능력부족 탓에 직장을 얻지 못하는 통상적 상황의 실업자가 아니다. 환란태풍을 만난 정부와 기업이 무능한 나머지 「무게 덜기」외의 수를 찾지 못해 도리없이 양산한 피해자들이다. 이들을 고르는 기준은 또 어떠한가. 오롯이 능력 순이라고 하기엔 줄서기와 연줄잡기, 비위맞추기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또 얼마랴. 업무능력과는 전혀 별개로 세속적인 살아남기 기술에 약한 나머지 떨려 나간, 그래서 오히려 더욱 진솔하고 우직한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살아남은 이들이 떠난 이들을 기억하는 가운데 인정하리라.
실업 자체보다 더 무서운 게 주위의 잘못된 눈초리다. 정부도 돈과 일자리의 실업대책 마련에 앞서 천대와 멸시속에 삐뚤어진 실업자관(觀)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IMF 고통을 가장 많이 껴안고 있는 수난자, 정부와 기업의 능력부족을 대신 짊어진 계층, 그럼으로써 경제를 이나마 지탱하는 버팀목. 실업자가 기죽지 않도록 제 위상을 찾아주는 게 실업대책의 첫단추다. 바닷물로 뛰어든것도 서럽거늘 그런 행위에 대한 평가마저 각자의 무능 탓으로 돌리다니, 살아남은 자의 비정한 횡포가 너무 심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