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 개혁장관이 선포한 ‘촌지·과외와의 전쟁’/“시원하다” 뜨거운 반응속에 “너무 튄다” 냉소도 존재하는데/이제껏 누구도 못한 대개혁을 그가 해낼 수 있을까지금 교육계는 떨고 있다. 마치 폭풍전야 같다. 역대정권이 번번이 실패했던 교육개혁, 이번엔 성공할 수 있을까. 김대중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교육정책 수장으로 온 이해찬 장관이 서슬퍼런 개혁의 칼을 빼든지 이제 2개월째. 특유의 이해관계에 얽히고 설켜 「교육마피아」라는 말도 낳는 교육현장에서, 이장관이라면 과연 송곳처방을 내릴 수 있을까. 이장관은 왠지 이름 석자에 긴장감이 감도는 사람이다. 두차례의 옥고, 광주청문회 스타, 의정단상의 송곳질문, 70∼80년대 대표적인 운동권 출신이라는 이력이 주는 이미지다.
그는 「교육개혁 전쟁」을 선포했다. 『촌지가 없다』는 일선 교육청 보고에 대해 『그럼 특감을 하겠다』는 불호령으로 기선을 놓지 않는다. 『불법과외교습자 명단을 공개하라』고 지시하는가 하면 허름한 봉고차로 현장(학교)을 순회하고 교사·학부모·전교조와 대화를 가진다. 또는 새벽 1시반까지 이어지는 교육부 직원들과의 토론-. 장관 부임후 그의 행적들이다.
『믿어 본다』 『시원하다』 『실세 정치인답게 강하다』 그러나 쏟아지는 기대들속에 한편에선 『너무 튄다』 『정치인 출신이 교육을 다 망치려든다』『교육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냉소적인 반응이 엄존한다. 한마디로 기대반, 우려반인 셈이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적어도 그가 「물장관」은 아닐 것으로 바라 보고 있다.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잘해야 본전」이기 십상인 교육개혁. 자신에 대한 주변의 이런 시선을 충분히 알고 있을 그는 어떤 수순을 펴 보일까.
이장관은 개혁작업에 교육의 주체인 교사 학부모 학생들을 참여시키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내세우고 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것 같으면서도 권위적이지 않은 스타일. 하위직원들의 조언도 기꺼이 수용한다. 불법과외 추방, 입시난 완화 등 그가 내세운 정책들이 딱히 새로울 것은 없다. 이번 개혁에 유독 기대를 거는 사람들은 바로 이장관의 현장밀착 노력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2개월간 그의 행보가 보여주는 또다른 암시는 급진개혁보다는 점진개혁에 무게중심이 실려있다는 것. 그는 예상보다 훨씬 신중하다. 말도 아끼는 모습이다. 섣불리 색깔을 드러내기 보다는 우선 교육현실을 파악하기 위한 공부에 열중하는 것 같다. 부임직후 교육부에는 서울시 정무부시장 시절 이장관의 업무 스타일과 성향을 파헤친 문건이 나돌았다. 「제도권에 대한 이해가 넓다. 점진적 개혁론자다.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걸 좋아한다…」 교육부 교육정책기획관 서남수국장은 『개혁안은 공론화과정을 거쳐 신중하게 결정하되 한번 결정한 정책은 강력하게 추진한다는게 장관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장관의 행보에 대한 우려와 저항도 만만치않다. 「아래로부터의 개혁」은 겉모습일뿐 실상은 『이것 해라, 저것 해라』는 지침식 개혁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촌지수수(학부모 출입)를 막기위해 교문을 걸어 닫았던 5공시절과 다를바 없이 강제적인 개혁이라는 것이다. 창동초등학교 교사 이용환씨는 『이장관은 다를줄 알았는데 (역대정권과) 똑같다』고 말했다. 그는 『진정한 개혁은 교육 주체들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주문했다.
또 다른 문제는 장관은 마구 뛰는데 일선 교육청 등 하부조직은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점. 이들 하부조직은 과거의 관행에 젖어 여전히 불필요한 공문만 남발하며 개혁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 충북지역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이장관이 취임한 3월에만 무려 300여건의 공문이 내려왔다』고 전했다. 그는 『요즘도 촌지 안받는다는 가정통신문 발송하랴, 상부에 실적보고하랴 피곤하긴 매일반』이라고 털어놨다. 연세대 교육학과 한준상교수는 『지방 교육감 등 하부 공무원들을 얼마나 움직이게 하느냐가 개혁 성공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장관이 우선적으로 주력하는 정책은 사교육비 절감과 입시고통 완화로 요약된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총론에는 찬성, 각론에는 이견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방과후 보충수업을 강화한다는 방침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전교조 이경희대변인은 『설문조사 결과 보충수업이 효과가 없다는 답변이 압도적이었다』며 『학교교육을 정상화, 교육의 질을 높여 과외수요를 줄이는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장관이 지금까지 교육과 맺은 인연은 초·중·고교 및 대학교를 다녔다는 것, 현재 대학생 딸을 둔 학부모라는 것, 당에서 정책위의장과 국회예결위원으로서 교육문제를 바라봤던 것이 전부이다. 그는 『딸이 초등학교 다닐때는 결석도 마다않고 토요일에는 함께 여행을 많이 다녔다.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고, 제도 교육에 의존하지도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선 학교장, 교감 등 교육계 기득권층에서는 「굴러온 돌」에 대한 거부감이 대단하다. 특히 교사평가제, 능력급제 도입 움직임에 대해서는 『말도 안된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개혁파들은 『이해관계에 얽매인 교육계 내부인사가 아니라 외부인사, 그것도 추진력 강한 실세정치인이 온 것이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교육개혁. 이는 단순히 교육행정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사회 문화전반의 의식개혁과 별개일 수 없다. 교육문제는 그래서 난마같이 얽혀 있다고들 한다. 이번엔 잘 될까. 이장관에게 다시 돌아가는 의문의 까닭이다.<남대희 기자>남대희>
◎DJ와 이해찬 장관의 교육정책 주요어록
만난을 무릅쓰고 교육개혁을 반드시 성취하겠다. 대입제도를 획기적으로 개혁하고 청소년들을 과외로부터 해방시키겠다.
김대중 대통령,98년 2월25일 취임사
과외비 부담을 덜기 위해 매년 사교육비를 20∼30%씩 줄여나가도록 하겠다.
이해찬 장관,4월2일 경기도교육청 업무보고
극소수의 촌지수수 임용비리 등 교육비리로 모든 교육가족이 멸시받고 있다. 교육비라는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이장관,4월2일 경기도교육청 업무보고
2002학년도부터 대학별 본고사를 억제하고 독서를 많이 한 학생이 유리하도록 입시제도 개선방안을 마련,올 3분기중에 발표하겠다.
이장관,4월13일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교육계에서도 성과급제나 계약직을 도입할 분야가 있을 것이다.
이장관,4월24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
◎정권따라 춤춰온 교육정책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평균수명은 5년이 채 안된다. 1945년 해방이후 50여년동안 대수술만 10여차례. 정권이나 교육부장관이 바뀔 때마다 교육제도도 덩달아 춤을 춰왔다.
해방후 이뤄진 최초의 교육개혁은 6334제의 미국식 교육제도 도입과 의무교육 실시가 핵심. 60년 4·19혁명으로 탄생한 제2공화국은 교육행정의 분권화를 내세웠지만 61년 5·16혁명정부의 개혁안에 밀려 흐지부지됐다. 혁명정부는 대학별 단독시험 대신에 대학입학자격 국가고사제를 도입했다.
66∼68년에는 대학이 다시 자율권을 되찾아 대학별 단독고사를 치렀고 68년에는 대학별고사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예비고사가 도입됐다.이때 중학교 무시험 진학이 이뤄졌고 74년에는 고교평준화 조치도 취해졌다.
5공도 80년 과외금지, 대학본고사 폐지, 졸업정원제 실시 등을 주내용으로 하는 「7·30조치」를 발표했다. 86년 대학입시에 논술고사가 추가됐지만 당초 의도와는 달리 객관성 등에 문제가 있어 2년만에 폐지됐고 88년에는 눈치작전을 막기 위해 선지원후시험제가 도입됐다.
94학년도부터 내신 수학능력시험 대학별고사로 치르는 현행 대입제도가 등장했다. 95년 5월31일에는 대학이 다양한 전형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교육개혁안이 발표됐다.
이번 정권도 교육을 개혁대상 1호로 겨냥하고 있다. 이번엔 100년간 유지되는 교육정책이 나오기를 국민 모두가 바라고 있다.<남대희 기자>남대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