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지사절 입간판을 교문에 세워라”/“교사·학부모가 모여 결의대회를 하라”/장관의 개혁이 일선에선 舊態로 변질/교육관료들의 권위주의 타성이/개혁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거론되기도 한다교문앞에 촌지사절 입간판을 세우고 교사들이 자정결의를 하는 등 학교마다 개혁의 바람이 분다. 전시행정식 개혁일뿐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교육주체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을 촉구하는 소리가 높다.
「우리 학교는 촌지를 받지 않습니다」 최근 서울 강남지역의 한 초등학교 교문앞에 설치된 입간판이다. 학교를 출입하는 학부모들을 향한 간판이겠지만 소속 교사들에게 스스로의 다짐을 요구하는 취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매일 교문을 드나드는 어린 학생들에게 이 간판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생각해 본 흔적은 전혀 없다. 잠깐만이라도 어린이들의 「눈높이」로 돌아가 보았다면 그래도 이런 문구를 게시할 수 있었을까.
이런 표지판이 유독 강남지역학교에 생긴 데는 이유가 있다. 새 정부의 교육개혁정책이 촌지에 대한 엄한 통제를 선언했고 이 바람이 강남교육청 산하 학교들에 특히 거세게 불어 닥치고 있기 때문이다. 촌지비리를 적발하라는 이해찬 장관의 서슬퍼런 특감지시가 내려진 이후 이 지역 각급 학교들은 요즘 벌집을 쑤셔놓은 분위기다.
「촌지를 받지 않는다」는 내용의 플래카드와 입간판이 교무실 근처에 들어서기도 했다. 교사와 학부모들이 모여 「억지춘향식」의 자정결의대회를 여는가 하면 거리에서는 교육청 특감반 직원들이 나와 학부모를 상대로 촌지제공여부를 묻는 기습적인 설문조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심지어 환경미화를 위해 학생이 정성껏 가져온 화분이나 액자까지 마구잡이로 돌려보내는 촌극도 벌어지고 있다. 괜한 오해를 사지 말자는 게 학교측의 궁색한 변명이다. 이외에도 불법과외 단속, 교사 성과급제 도입, 교사와 학부모에 의한 학교장평가제, 정년단축 등 교육현장에 개혁바람은 날로 새롭게 불어댄다.
그럼 「학교」가 정말 바뀔 것인가. 적어도, 지금 바뀌고 있는 중인가. 개혁에 대한 학부모들의 호응은 뜨겁다. 이들은 촌지문제를 풀어가는 교육당국의 단호한 의지에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사교육비를 줄여 가계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정책취지에 대해서도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교육행정의 일선에서 이런 개혁취지가 「교문표지판」정도로 밖에 나타나지 못하는 실정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를 지켜보는 일선 교사들의 심정도 착잡하다.
『또 쇼를 하고 있구나』 강남 J초등학교의 박모교사는 요즘처럼 교사생활이 힘든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촌지거부를 적은 교문앞의 입간판을 보고 지나가는 어린 제자들이 「선생님」을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앞선다. 박교사는 『촌지관행을 없애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시행정에만 매달리는 교육관료들의 발상부터 고쳐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장관의 구상은 「아래로부터의 개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금천고 김수열교사는 『가뜩이나 과중한 업무부담에 지쳐있는 교사들을 또다시 위로부터 내려오는 행정지시만 쫓아 다니게 해서는 진정한 교육개혁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장평중 박혜정교사는 『교사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교육환경에 대한 합리적이고 근본적인 개선 노력도 없이 교사들만 변해야 한다고 다그쳐서 무엇이 달라지겠느냐』고 의구심을 표시했다. 이 말들이 교사들의 자기변명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장관의 개혁이 제대로 추진되려면 정책을 수행하는 교육관료들의 권위주의적 타성과 교육행정의 비민주적인 풍토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교육계내부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는 교육개혁을 가로막는 또 다른 저항으로 교육관료집단이 지목되는 배경과도 관련이 있다. 또 정치인 출신의 개혁 드라이브에 대한 불신감이기도 하다. 한 중등학교 교장은 전화인터뷰에서 이렇게 털어 놓았다. 『백번 해보세요. 교육개혁이 쉽게 되는지. 누구는 교육개혁 안하고 싶어서 지금까지 안했겠습니까. 교육현실을 제대로 모르고 하는 말이예요』<김병주 기자>김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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