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4년전인 94년 봄. 제네바에 출장가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을 취재했다. 그때 국회의원과 농민 대표들이 회담장 앞에 몰려와 삭발을 하고 혈서를 쓰는 것을 눈으로 직접 지켜 보았다. 그리고 나도 흥분했다. 그 때만 해도 우리에게 「개방」은 악(惡)이었고 개방을 요구하는 세력은 적(敵)이었다.그런데 지금은? 무엇이 악이고 누가 적인가?
쌀은 물론이고 거의 전 분야의 빗장이 풀린 지금, 우루과이 라운드를 훨씬 지나 다음 세기에 대비하는 밀레니엄 라운드까지 논의되고 있는 98년 봄 지금, 대답은 간단하다. 악도, 적도 다 내부에 있다. 다 우리가 키운 것들이고 우리 사회의 토양 속에서 자라난 것들이다. 국가 최고결정권자건, 정책입안자건, 기업이든, 소비자든 다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었다. 개방은 더이상 악이 아니고, 문을 열라고 외치는 외국은 더이상 적이 아니다.
세계는 지금 하나의 기준으로 가고 있다. 이 흐름은 분명한 대세다. 적자생존의 문제이므로 거스를 수가 없다. 정치 경제 법률 문화에 이르기까지 통용되는 하나의 표준 「글로벌 스탠더드(세계 기준)」가 확산되고 있다. 그 주역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하는 미국이다. 그래서 글로벌 스탠더드는 미국기준으로 통한다. 엄청난 잠재력과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호황과 대조적으로 침체를 겪고 있는 일본내 일부 보수지식층에서는 「미국기준을 의심하자」는 반론들이 나오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21세기에도 미국의 시대가 기울지 않는 한 미국기준은 모든 「로컬 스탠더드(지역 기준)」를 쫓아낼 것이 분명해 보인다.
우리에게 글로벌 스탠더드의 전도사는 국제통화기금(IMF)이다. IMF체제 하에서 우리는 혹독하게 글로벌 스탠더드를 학습하고 강요받고 있다. 그 핵심은 물론 경쟁력과 투명성이다. 다운사이징(감량경영), 구조조정, 재벌개혁, 회계제도 개선, 정경유착의 근절 등 서구적 경제가치에 적응하기 위해 우리 기업들은 몸부림치고 있다. 「먹이지도 먹지도 않겠다」는 일본 대기업들의 잇따른 접대금지 선언이나, 우리 검찰의 환란(換亂)수사 등은 진통의 과정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로 가는 과정에서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아시아적 가치는 사회적으로는 유교에 바탕한 인간관계 중시, 정치적으로는 빈곤을 퇴치하기 위한 개발독재의 합리화, 경제적으로는 인간주의 경영이었다. 그러나 아시아 금융위기가 도래한 이래 부정적 경제측면에 눈이 쏠리면서 이제 그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종신고용이나 가족식 경영, 연공서열 중시 같은 아시아 기업의 특성이 결국은 서구의 합리적인 시장주의, 계약주의에 무릎을 꿇었다는 논리다. 과연 그런 것인지 학자마다 견해는 조금씩 다르다. 정책의 단순한 실패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아시아적 가치는 퇴조되고 있는 분위기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요구하는 가치체계와 거리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는 지금 극심한 구조조정을 겪고 있다. 경제적 가치가 사회·문화적 가치까지 변화시키면서 우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의리 대신 합리, 공생공사보다는 적자생존, 인간적 정 대신 제도적 실용이 중시되면서 가치체계는 혼돈스러워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제는 보다 분명해진다. 어떻게 이 새로운 가치문화를 수용 적응하면서 우리의 것들과 조화롭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를 정립하는 것이다. 그것이 질곡의 이 시대가 요구하는 「코리안 스탠더드」가 될 것이다. 남이 아니라 우리를 향해 삭발하고 혈서를 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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