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권 등 결제채택 영향/3,000억弗 해외서 유통/위폐범 전세계 극성 불구/美선 인플레방지로 ‘반색’미국엔 현금이 없다?
이상한 얘기같지만 사실이다. 총 4,500억달러의 현금(지폐·동전)중 3분의 2인 3,000억달러가 미국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다. 다른 나라 은행의 금고 속에, 또는 외국인의 지갑 속이나 이불 밑에 꽁꽁 숨겨져 있는 것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따르면 최근 5년동안 해외에 반출된 미 달러화는 매년 150억∼200억달러씩 늘어났다. 동구권 붕괴 이후 심정적으로 미 달러에 거부감을 보여왔던 구 소련경제권 국가들과 아프리카, 중동의 여러나라들이 앞다퉈 달러를 주요 결제수단으로 채택하면서 유통이 급속히 늘어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외국유통 달러의 80%가 가장 단위가 높은 100달러짜리 지폐라는 점이다. 현금자동지급기(ATM)의 사용 편의상 20달러 지폐가 보편화한 미국내와는 판이하다.
달러가 이렇게 외국에서 대규모로 유통되는 것은 미국의 입장에서도 환영한만한 일이다. FRB측은 『국내 통화량의 팽창을 억제해 인플레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고, 또 3,000억달러라는 돈이 미국 내에 있을 경우 정부가 이자 지급을 위해 세금으로 거둬야 할 150억∼200억달러를 줄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해외에서의 미국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관광 편의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도 부수적인 이득이다.
달러가 이렇게 인기있다 보니 웃지 못할 해프닝도 적지 않다. 미국은 위폐방지를 위해 96년 3월 100달러 지폐 신권을 발행한 뒤 수백만달러의 홍보비를 들여 『구권 역시 유효하다』는 것을 세계 각국에 알렸다.
그러나 200억달러 정도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인들이 이 발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당국의 화폐정책을 신뢰하지 못해 앞다퉈 은행으로 몰려드는 대소동을 벌였다. 2%의 수수료를 뗀 은행이 톡톡히 재미를 본 것은 물론이다.
「달러 상종가」가 만들어내는 한가지 걱정거리가 있다면 위폐가 더욱 극성을 부릴 것이라는 점이다. 위조지폐를 제1선에서 감시하는 「시크릿 서비스」(Secret Service;미 재무부 비밀검찰부)의 전체 해외요원은 20명에 불과하다.90년 동독 비밀경찰 「슈타시」의 본부에서 발견된 위폐제조 연구소, 최근 태국에서 체포된 위조단이 일본 적군파 테러리스트였다는 점 등은 달러 위폐가 세계 각국에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FRB는 유럽단일통화인 「유러」가 실질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2002년 1월1일, 혹은 유러의 원활한 통용을 위해 유럽각국이 자국 통화를 모두 회수해야 하는 2002년 7월1일까지는 적어도 미 달러지폐를 대적할 「적수」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황유석 기자>황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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