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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개혁의 막전막후:6(문민정부 5년: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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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개혁의 막전막후:6(문민정부 5년:18)

입력
1998.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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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비켜간 “율곡 반쪽特監”/이회창감사원장 “독립적위상 확인” YS 사전재가 없이 착수/‘F16기종변경’ 盧전대통령 조사방침에 “정치보복인상” 청와대 제동/권영해 국방 사표도 반려… 防産비리 메스 ‘절반의 성공’ 그쳐『차세대 전투기사업(KFP) 기종선정때 정부 고위당국자들은 F16기를 선호한 데 반해 나는 F18기를 고수했다. 기종이 F18에서 F16으로 바뀐 것은 미국 제너럴 다이내믹스사의 로비때문이었다』

93년 4월24일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한 정용후(鄭用厚) 전 공군참모총장의 이 발언은 가뜩이나 복마전으로 치부되던 「율곡사업」(무기 및 장비 현대화 사업)에 대한 의혹을 천정부지로 증폭시켰다. 일각에서는 정 전총장이 장성 진급을 미끼로 거액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적발돼 강제 전역된 처지여서 그가 자신의 혐의를 희석시키기 위해 이 문제를 걸고 들어갔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세인의 일반적 시각은 KFP사업의 추진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전직 공군총장이 오죽했으면 의혹을 제기했겠느냐는 것이었다.

3일후인 27일 감사원은 율곡사업에 대한 전격적인 감사착수를 발표했다. 정전총장의 폭로가 동기가 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당시 감사원 관계자들의 배경설명은 다르다. 황영하(黃榮夏) 전 감사원 사무총장의 회고.

『율곡사업은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 시절에 시작했지만 그때까지 청와대 비서실과 함께 한번도 제대로 감사를 받지않은 성역중의 성역이었습니다. 때문에 감사원의 직무상 독립을 대내외적으로 확인하는 차원에서 이회창(李會昌) 원장이 독자적으로 감사를 결심한 것입니다. 김영삼(金泳三) 대통령과의 사전 협의나 재가도 없었어요. 감사과정에서도 1∼2주에 한번씩 이원장이 김대통령과 독대를 했지만 진행상황을 단지 구두로 설명했을 뿐이었어요. 한번도 청와대 보고를 위한 문건을 만든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정황을 종합할 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발견된다. 율곡감사가 여권핵심부의 군개혁 프로그램과는 무관하게 시작됐다는 점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감사의 원천적 한계를 규정하는 족쇄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감사원은 7월9일까지 70여일간 감사에서 43명의 감사요원에 감찰반인 5국 요원들까지 투입, 관련자료 검토는 물론 예금계좌도 추적해 군수뇌부와 청와대 관계자가 무기중개상 등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에따라 이상훈(李相薰) 이종구(李鍾九) 전국방장관, 김종호(金鍾浩) 김철우(金鐵宇) 전해군참모총장, 한주석(韓周奭) 전공군총장과 김종휘(金宗輝) 전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6,700만∼7억8,000만원의 뇌물수수 혐의로 사법처리됐다.

그러나 정작 관심의 초점이 된 대목은 차세대 전투기 기종변경과 관련한 노태우(盧泰愚) 전대통령의 로비연루 여부였다. 권영해(權寧海) 국방장관과 이필섭(李弼燮) 합참의장, 이양호(李養鎬) 공참총장은 4월28일 기자회견을 갖고 기종변경 경위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정부는 89년12월 현지 시험평가와 몇년간 자료분석 결과 중거리 공대공(空對空) 유도탄 장착 및 발사능력이 뛰어난 F18 120대를 50억5,000만달러에 구입하기로 결정하고 90년10월까지 가격협상을 벌였으나 F18의 가격이 기종결정때보다 12억3,000만달러가 인상돼 구입이 어렵게 됐다. 이에따라 90년11월부터 91년3월까지 국방부 합참 공군 등 전 관련기관이 재검토한 끝에 4억달러의 추가 가용예산으로 120대 구입이 가능한 F16으로 바꾸게 됐다. F16의 선정은 국익을 위해 매우 적절한 조치였다고 확신한다』

국방부는 이날의 설명으로 파문이 가라앉길 바랐지만 의혹은 계속 커져갔다. 요는 『업계의 로비와 통치권자의 개입없이 수천억원이 소요되는 사업내용의 급작스런 변경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다가 『김종휘전수석이 F18이 타당하다는 공군의 입장을 수차례 묵살하고 줄기차게 F16으로 바꿀 것을 고집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노전대통령의 조사를 요구하는 여론이 갈수록 비등해졌다.

결국 감사원은 우여곡절끝에 같은해 9월 서면질의서를 연희동 자택에 보내 노전대통령의 소명을 받았다. 그러나 소명내용은 로비연루 의혹에 대한 전면 부인과 함께 『기종변경은 전적으로 정책적 선택이었다』는 국방부측 해명을 되풀이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관한 황영하 전총장의 증언.

『기종변경 이유에 대한 노전대통령의 소명은 한마디로 수긍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물증확보를 위해 노씨의 계좌추적도 시도했지만 직무감사가 고유업무인 감사원의 권한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감사원이 보기에도 의혹의 소지가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실제로 감사원은 국방장관은 기종변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는데 노전대통령이 김종휘수석의 건의를 받아 기종변경 검토를 지시했고, 정부는 가용예산의 범위를 축소해 F16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최근 감사원 문건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노전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여기서 끝났다. 감사원의 서면조사 이후 공은 청와대로 넘어간 형국이었지만 청와대는 더이상 사태의 확산을 원치 않았다. 사실 청와대는 감사원이 노전대통령 조사방침을 밝혔을 때부터 『정치보복의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는 등의 논리로 연희동측과 함께 감사원을 은근히 압박했었다. 처음부터 율곡감사가 「본의」가 아니었던 청와대로서는 어찌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권영해 국방장관 동생의 수뢰파문이었다. 권장관은 동생 인 권영호(權寧鎬)씨가 무기상 정모씨로부터 5,000만원을 받은 사실이 감사결과에 포함돼 있음이 뒤늦게 드러나 궁지에 몰렸다. 게다가 권장관은 이미 국방부 기획조정실장 재임때부터 율곡사업의 결재라인에 있었고 최세창(崔世昌) 장관시절에는 차관으로 이 업무를 전담하다시피 한 인물. 하지만 감사원은 권장관에 대해 「무혐의」판정을 내렸다. 황우려(黃祐呂) 전 감사위원(현 한나라당의원)의 증언. 『당시 감사원은 권장관과 동생의 연결고리를 찾기위해 권장관의 계좌를 샅샅이 뒤졌고 권장관이 살고 있는 가락동 Y빌라의 재원까지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권장관은 예상외로 깨끗했어요』

그러나 당시 감사관 K씨의 견해는 달랐다. 『권장관 계좌추적에서 단서가 잡히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권장관이 결백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감사의 한계 때문이지요. 현실적으로 통치권 차원에서 표적을 정해 감사원과 검찰 국세청 은행감독원 등을 총동원하지 않고는 거물들의 교묘한 재산은닉을 캐내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청와대는 권장관에 대해 이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대통령은 권장관이 제출한 사표를 반려해 그에 대한 각별한 신임을 재확인했다. 각료들이 부동산 투기 등 개인비리 의혹으로 줄줄이 도중하차했던 당시의 서슬퍼런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는 「특혜」라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감사원은 비리문제는 검찰에 넘긴 뒤 112건의 지적사항을 국방부에 통보했지만 구체적 내용은 대부분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공개하지 않았다. 때문에 감사결과가 이후 율곡사업 추진에 얼마나 제대로 반영됐는 지는 일반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당시 감사원 고위관계자의 전언. 『93년 정기국회 예결위에서 였어요. 야당의원들은 이미 감사원에 대한 국정감사를 통해 감사원의 율곡사업관련 지적사항을 모두 알고 있었고 이를 토대로 권장관에게 시정방향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권장관은 「그런 문제점을 보고 받은 바 없다」「사실무근이다」는 식으로 시종일관 거짓 답변을 하는 거예요. 도대체 사업개선 의지가 있는 것인지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율곡감사는 마지막 성역으로 남아있던 방위산업 비리에 처음으로 메스를 가했다는 점에서 그 자체만으로도 중대한 의미를 갖는 일대 사건이었다. 하지만 번번히 권력의 정치적 고려라는 벽에 막혀 「핵심」을 파헤치는 데 실패함으로써 「반쪽의 성공」에 그치고 말았다.<윤승용·유성식 기자>

◎율곡사업이란/“무기 현대화” 74년 시작/국방예산 3분의1 투입/커미션의혹 끊이지 않아

율곡사업은 74년 당시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이 자주국방의 기치를 내걸고 군 무기 및 장비현대화와 방위산업 육성을 위해 시작한 장기 사업으로 현재까지 계속 추진되고 있다. 「율곡」이라는 명칭은 16세기 임진왜란에 앞서 왜적의 침략을 예언하며 10만 양병론을 주창했던 이이(李珥)선생의 아호인 율곡(栗谷)에서 따온 것.

지금까지 이 사업에는 700억달러 정도의 정부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91년부터 5개년 계획으로 추진된 제4차 율곡사업에만도 243억달러가 투자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예산은 정부 전체예산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데 율곡사업비가 매년 국방예산의 3분의 1안팎을 차지한 것이다.

그런데도 율곡사업은 93년 감사원의 감사를 받기전까지 20년 동안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채 진행돼왔다. 박정희정권과 5, 6공에서 군부는 보안을 명분으로 통상적 감사마저 기피해 왔고 감사기관도 군의 막강한 위세에 눌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5공 신군부 실세중 한 사람인 황영시(黃永時) 감사원장이 재임하던 84년 단 한 차례 감사가 시도된 적이 있지만 이때도 국방부의 비협조로 흐지부지됐다. 당시 황원장은 감사계획서에 대한 전두환(全斗煥)대통령의 결재까지 받아냈으나 국방부측은 핵심서류의 공개를 거부했다.

자연 사업의 투명성을 두고 온갖 의혹과 잡음이 제기됐다. 무기도입 커미션의 정치자금화 의혹과 구매선을 둘러싼 한미간 마찰 등이 그것이다. 93년 차세대 전투기 기종변경 의혹이 일기 전에도 80년대 중반 F­20항공기 도입과 관련한 625만 달러의 로비자금 추문이 정·관계를 뒤흔들었지만 당국은 의혹을 덮기에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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