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국민성부터 바꿔야/김동길(東窓을 열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국민성부터 바꿔야/김동길(東窓을 열고)

입력
1998.04.27 00:00
0 0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선생께서 「공선사후(公先私後)」라는 한마디를 좌우명으로 삼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공과 사를 구분 하되 공적인 것을 우선으로 하고 사적인 것을 뒤로 미룬다는 뜻으로 풀이가 됩니다. 그 깊은 뜻을 헤아린다면 「공」을 위해 「사」는 희생시키는 것이 마땅하다는 마음의 자세를 말씀하신 것 같기도 합니다.오늘 한국인에게 있어서 심각한 문제는 「공」과 「사」가 전혀 구분이 안된다는 것이고, 설사 구분이 가능하다 하여도 「공」은 안중에 없고 오직 「사」만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그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자기 집의 쓰레기를 골목길에 내다 버리고도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는 것이 오늘의 한국인이란 말입니다. 저 사는 집의 큰 길과 골목이 아무리 더럽고 지저분해져도 자기 집의 대문 안만 깨끗하면 상관않는다는 식의 사고방식입니다.

공원의 꽃나무라도 기회만 생기면 파다 제 집 마당에 심는 일은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서울 시내의 어느 고급호텔 1층 화장실에 손 씻고 나서 손을 닦으라고 희고 작은 무명타월을 준비한 적이 있었습니다. 쓰고 나서 정해진 통에 던지고 가면 세탁해서 열번 스무번 더 써야 하는 것인데 쓰고 나서 제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가니 하루에도 여러 백장이 없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고급스런 봉사는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국민을 문화민족이라 할 수 있습니까. 이런 사람들을 거느리고 과연 민주주의의 새 나라를 건설할 수 있겠습니까.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오래전 일이기는 합니다마는 국회 국방위원회에 속한 의원들의 아들들 중에 병역 때문에 해외유학이 불가능한 젊은이들이 있었답니다. 심사숙고 끝에 병역 미필자도 출국할 수 있는 법령을 가결하였답니다. 더 웃기는 사실은 그자들의 아들들이 다 외국유학을 떠난 뒤에 그 법령 자체를 폐기했다고 들었습니다. 지도층 인사들이 모두 그 모양이었는데 서민대중이 공중변소의 화장지를 몽땅 들고 가는 사실을 탓할 수 있겠습니까. 아들들을 군대에 안보내려고 어린 것을 해외에 유학시켜 영주권을 얻게 하는 그런 방식으로 불법을 자행한 저명인사들이 여러 백명 된다고 들었습니다.

가정만 있고 사회는 없는 나라가 바로 이 나라입니다. 대문을 굳게 잠그고 안에서는 불고기를 구워 먹습니다. 대문을 열어놓으면 냄새맡고 몰려드는 사람들이 많아 귀찮게 되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부(富)의 공정한 분배가 불가능한 나라입니다. 어느 놈이 얼마를 꿀꺽 삼켰는지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많이 먹었어도 큰집에 들어갔다 나오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크게 먹었지만 큰집에 가지도 않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이런 나라가 잘 될 수 있습니까. 세무서원을 포함하여 공직의 높은 자리에 앉았다 물러나 죽는 날까지 가난하게 지내는 사람을 몇이나 보셨습니까.

동지회니 흥사단이니 수양회니 절제회니 도덕재무장운동이니 새마을운동이니 하는 단체들이 다 건재함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이 꼴이라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사실입니다. 정치인도 썩고 경제인도 썩고 공무원도 썩고 언론인도 썩고 연예인도 썩고 심지어 학교선생도 교회 목사도 다 썩은 이런 나라가 이 지구상에 또 있겠습니까. 동남아의 여러 나라들도 우리보다 더 썩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대통령 각하, 이 부정과 부패를 어떻게 하시렵니까. 이러다가는 태평양의 새 시대가 오기도 전에 이 나라는 병들어 다 죽게 되겠습니다. 청와대의 일꾼들을 거느리시고 우선 국민성 개조에 앞장서 주셔야 하겠습니다.<金東吉·전연세대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