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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가 없었으니…”/문명금씨 치욕의 위안소 찾아 만행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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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가 없었으니…”/문명금씨 치욕의 위안소 찾아 만행 고발

입력
1998.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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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순씨 “언니 이렇게 만든자들을…” 울먹/가족상봉 이틀째 표정문명금(文明今·81)할머니는 25일 여동생 명순(明順·77), 남동생 길호(吉鎬·70)씨와 함께 35년께부터 10여년간 치욕을 당했던 헤이룽장(黑龍江)성 순우(孫吳)현에 있는 일본군 위안소를 찾아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했다.

2차대전 당시 일본 관동군 제4군의 군인회관으로 사용된 순우위안소에 도착한 문할머니는 『나는 하나도 모른다』며 악몽을 되살리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명순씨가 『언니를 이렇게 만든 자들을 어떻게 해야지』하고 울먹이자 『너희들이 그 아픔을 어떻게 알겠니』라며 일제의 만행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당시 장교들의 군인회관으로 사용된 이 곳에서 고초를 겪었던 문할머니는 1층의 한 방을 가리키며 『내가 저 곳에서도 머물렀다』며 『함께 있던 50여명의 조선처녀 가운데는 고통을 견디지 못해 목을 매 죽거나 도망치다 잡혀 숱한 매질을 당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길호씨가 『왜 도망도 하지 않고 당하기만 하셨어요』라고 묻자 『내 나라가 없으니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고…, 시키는 대로 했지 무슨 도리가 있었겠니』라며 눈물을 훔쳤다.

순우현 문물유적지를 관리하고 있는 동북동업대 양바이린(楊伯林·63)교수는 『위안부들이 기거하던 2층은 2∼3평 정도로 다다미가 깔려 있었고 화장대 간이세면대 등이 있었다』며 『일본군이 물러간 뒤 방직공장으로 사용되던 것을 일제 만행을 후대에 알리기 위해 보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순씨와 길호씨는 중국정부가 운영하는 침화일본군유물기념관에 들러 세균전 실험으로 유명한 731부대의 최대 지대인 673부대의 유물과 위안소 관련 자료를 둘러보았다.

명순씨 형제는 이번 방문에 왕복비행료를 협찬한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28일 귀국한 뒤 남편 걱정에 고국으로 돌아오기를 거부하고 있는 명금할머니의 거취문제를 가족들과 논의키로 했다.<헤이룽장성 순우현="김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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