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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한 시대의 오페라/박래부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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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한 시대의 오페라/박래부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8.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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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경씨는 오페라 「춘희」의 여주인공 역으로 한국최초의 프리마 돈나가 되는 영광을 안은 성악가이다. 그는 그후 김자경오페라단을 창단하고 후배들을 지도하면서 우리 성악계를 키워왔다. 그러나 이 원로성악가의 「춘희」초연에 대한 회고는 생각만큼 화려하지는 않다. 차라리 고통스런 기억이 더 많다.『왜 하필 1월에 공연을 했는지,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를 견디다 못해 큰 화로에 숯불을 피워놓고 공연했다. 그래도 하얀 입김은 눈썹에 얼어붙고, 콧물은 고드름이 되는 통에 무대에 서려면 얼음부터 떼어내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해방 후의 악조건 속에서 강행된 그 혹한기 공연은 「어려움을 뚫고 나가라」는 상징적 의미였는지도 모른다. 김자경씨는 『다행히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입장권은 날개 돋친듯 팔렸고, 극장앞은 오페라를 감상하려는 이들로 긴 행렬을 이루었다』고 말한다.

올해로 한국오페라가 50년을 맞았다. 1948년 1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춘희)」가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막을 올린 뒤, 국내에서 모두 730여회의 오페라가 공연되면서 반세기를 아름답게 장식해 왔다. 음악계도 해외에서 유학하거나 활동하는 성악가가 3,000명이 넘을 만큼 성장했다. 한국오페라 50년, 김자경오페라단 창단 30년이라는 큰 경사를 맞아 18일에는 범 성악인 행사로 기념축하음악회가 열렸고, 「라 트라비아타」도 다음 주부터 다시 막을 올린다.

노래는 언제, 어디서나 인간의 정서를 표출하는 자연스런 수단이고, 모든 문화의 저변을 흐르며 윤택하게 하는 강물과 같다. 최근 남편인 클린턴 미대통령과 함께 아프리카를 여행한 힐러리는 자신들이 머무는 곳마다 아프리카 여인들이 찾아와 노래로 인사를 하는데 큰 감동을 받았다고 쓰고 있다.

「아프리카 여인들의 합창」이란 제목의 이 글은 「가는 곳에서마다 만난 여인들은 그들의 삶과 희망, 가족, 그리고 새로운 아프리카에 대해 노래했다. …여러 세대의 여인들이 참여하면 더 힘찬 합창이 되었다. 그들은 아무도 자신들의 노래가 어디서 유래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나는 아프리카 여인들의 노래가 언제까지나 멎지 않기를 바란다」고 기술하고 있다.

사람들은 평화시에는 삶을 자극하는 요란한 노래를 즐겨 부르고, 전시(戰時)에는 애상적인 노래로 감정을 다스린다. 또한 정치적 탄압의 시대에는 저항의 노래를 합창함으로써 깨어있음을 증거한다. 「춘희」초연 이후 수많은 오페라가 열정적으로 공연된 것은 지난 50년이 우리에게 매우 역동적인 시기였음을 말해준다. 이것이 사회의 생명력 같은 문화예술활동은 언제든 멈춰져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하지만 우리는 「춘희」가 초연될 때 처럼 경제가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지금은 사람들이 문화예술에서 더 많은 위안을 받고 싶어 하지만 반대로 문화는 위축되는, 딱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모두 어렵고 힘들 때 어느 오페라, 혹은 뮤지컬이 희생적으로 서울과 지방에서 활발히 공연됨으로써 대중의 사랑을 받는 국민적 작품으로 부상하는 것을 보고 싶다. 미국이 이런 정책으로 1930년대의 대공황기를 넘겼듯이 우리 정부도 이런 문화를 유도하고 지원해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자리잡아 가는 문화상품권 제도, 무료 연극축제, 미술 경매제도등에서 문화회생의 새로운 희망을 읽는다. 국민의 애정이 시들지 않는 한, 문화예술은 미구에 지금의 선잠에서 깨어나 경제난을 돌파하는 큰 에너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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