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개혁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한은은 21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현재 13부2실1연구소인 본부조직을 9부2실로 축소하는 개편안을 처리할 예정이었으나 노조등의 반발에 부딪쳐 의결을 연기했다.특히 조직감량을 위해 계획한 목포 울산 포항 강릉등 4개지점의 폐쇄 방침을 사실상 백지화한 것으로 알려져 뒷말이 무성하다. 그동안 한은은 해당지역 주민들과 정치권으로부터 지점폐쇄를 철회하라는 압력을 받아왔다. 지점폐쇄가 거론된 지역중 목포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포항은 박태준(朴泰俊) 자민련총재, 강릉은 조순(趙淳) 한나라당총재, 울산은 차수명(車秀明) 국회재경위원장 등의 연고지역이어서 더욱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금융관계자들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은이 정치권에 밉보이기 싫어 발을 뺀 것이라고 고개를 흔든다. 만에 하나 이같은 지적이 사실이라면 한은의 독립성에 또다른 흠집을 남긴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이미 우리는 한은이 손발을 자르는 고통을 딛고 자존(自尊)을 되찾아야 진정한 독립과 권위를 회복할 수 있다고 충고한 바 있다. 그런데도 한은이 본부조직의 개편은 고사하고 지점축소까지 중도포기하는 유약한 모습을 보인 것은 안타깝다. 금융계 인사들은 한은총재가 금통위의장이고 상근 금통위원(차관급)이 6명 임명됐는데도 한은이 종전과 같이 부총재보(이사)를 5명이나 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조직체계라고 비판한다. 학자출신 총재가 혈혈단신으로 부임, 한은의 개혁 수술을 주도하기에는 안팎의 벽이 너무 두꺼운 것일까.
IMF체제 이후 금융권에서는 벌써 1만5,000여명이 직장을 떠났고 앞으로 금융기관의 합병, 폐쇄 등 구조조정 과정에서 얼마나 더 많은 은행원들이 실직의 고통을 당할 지 짐작하기 어렵다. 그런데 금융계 뿐 아니라 경제 전반의 구조조정을 선도하고 독려해야 마땅한 한은이 자기개혁조차 못하고 있는 것은 실망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기획예산위원회는 공공부문 개혁대상에 한은을 포함시켜 산업은행, 수출입은행등 국책 금융기관을 포괄하는 금융개혁 차원에서 구조조정을 진행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동안 한은은 정부조직개편위원회 등의 개혁대상에서 제외됐지만 기획위는 이제 어떤 기관도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앙은행은 정치권, 행정부 등 어느 곳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고 믿는 우리는 한은이 공공부문 개혁대상에 도매금으로 포함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판단한다. 아무쪼록 한은 임직원들은 외부의 난도질을 부르지 말고 자발적인 개혁의 결단을 내려주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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