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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박진열 사회부장(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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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박진열 사회부장(광화문)

입력
1998.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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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초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존경받는 선생님 한 분이 계셨다. 그 분은 수업시간에 떠들거나, 졸거나, 딴 짓을 하는 학생은 반드시 불러내 수업이 끝날때까지 교탁 옆에 세워놓았다. 그리고는 『교탁에 서면 모든 학생의 움직임이 손바닥처럼 보인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이 선생님에게 한 차례 불려나가 혼쭐이 난 학생은 다시는 수업시간에 그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고 우리 반의 수업분위기는 항상 같은 학년에서 최고였다. 수업을 이끌어가는 선생님의 「자리」에 학생이 서보게 함으로써 선생님의 어려움을 이해시키는 훌륭한 교육방법이라고 생각했다.얼마전 새 내각의 김정길(金正吉) 행자부 장관으로부터 비슷한 말을 듣고 새삼 초등학교 시절 일이 떠올랐다. 야당의원으로 국회 내무위원을 지낸 김장관은 『의원으로 몸담았던 국회내무위에 장관으로 출석, 느낀 점이 많았다』고 실토했다. 입장이 바뀌니 생각도 많이 달라지더라는 것이다. 김장관은 야당의원들로부터 성가신 질문에 시달리고 난 뒤 『내가 의원으로 있을 때 좀더 잘 할 걸 하고 후회했다』는 농담도 했다. 나는 새 정부에서 중책을 맡은 사람들 여럿으로부터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상대방과 입장을 바꿔보는 것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정말로 필요하다. 거울을 보면서 옷매무새를 고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역지사지(易地思之)도 바로 이런 의미다.

2월25일자로 40여년만에 정권이 교체되면서 우리 국민들도 모든 분야에서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게됐다. 「최선의 선택」이란 지난 대선결과 분석도 바로 이런 취지에서 나온게 아닌가 한다. 특히 정치권의 경우는 야당이 여당이 될 수 있고, 여당도 야당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이전투구식 정치구태가 끝장날 것으로 믿었다. 국민들은 이같은 관용과 협조의 분위기가 IMF구제금융의 치욕을 벗어나는데 활력소가 될 것으로 기대가 컸었다. 김대중(金大中) 정부 출범이후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이 선거때 득표율 이상의 높은 지지를 보낸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도 채 안된 지금 이같은 국민적 기대는 사그라들고 있는 것 같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구먼』이란 말도 들려 걱정이다. 뭐 하나 속시원하게 풀려나가는게 없기 때문이다. 야당은 사사건건 여당의 발목을 잡고, 여당은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거대 야당에 밀려 한 발짝 나아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지방선거를 불과 한달여 앞둔 시점에 선거법 개정협상의 결말을 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언제부터 여당이 됐나』 『평생 여당만 할 줄 알았던가』라는 비아냥까지 들린다.

경제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 「6월 대란설」의 불씨가 그대로 남아있다. 화급한 실업대책은 내놓기 무섭게 비판세례를 받고있다. 대량해고가 가시화하면서 최근에는 양대노동단체가 결속력을 강화하고 있고, 한편에선 실업자동맹까지 등장할 조짐이어서 노동현장의 앞날도 심상찮다. 이 판에 일부 기업주는 구조조정은 등한시한 채 자기 몫 지키기에 급급하고 있다. IMF체제가 시작된 지 5개월이 채 안된 시점에 외국의 일부 신용평가사들은 「우리나라 경제가 다시 제2의 IMF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여·야정치인, 노동자·사용자 모두가 겸허한 마음으로 다시 한번 입장을 바꿔 시작하자. 지금이야말로 여당과 사용자는 더 관용을, 야당과 근로자는 더 협조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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