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봄 전송할 겨를을 놓치고 말았다. 꽃잎 벙글고 연푸른색 나뭇잎 돋아나느라 온 숲이 수런거리는 흥결에 묻혀 잠깐이라도 일상의 무게를 좀 덜어볼까 싶었더니, 조급하게 찾아온 더위가 황망(慌忙)스럽게도 봄의 끝자락을 걷어가 버리고 말았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일부러 책을 들추지 않아도 저절로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조윤성(曺允成)이라는 분이 지은 <봄이 간다커늘 술 싣고 전송가니 낙화(落花)하는 곳에 간 곳을 모를러니 유막(柳幕)에 꾀꼬리 이르기를 어제 갔다 하더라> 라는 시조이다. 스러진 꽃잎을 밟으며 봄을 전송하러 들길로 나선 주인공의 풍류넘치는 여유와 황망하게 가버린 봄소식을 꾀꼬리말로 『어제 갔대요』라고 전하는 재치있는 표현이 멋스러워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무상한 세월에 대해 짜증과 신경질, 원망이나 한탄을 퍼붓는 대신 허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노래 지은이의 마음가짐이 하도 좋아서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즐거운 웃음이다.내친 김에 단가 「사철가」 음반을 골랐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어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드라… 왔다 갈줄 아는 봄을 반겨헌들 쓸데 있나 봄아 왔다가 가려거든 가거라 네가 가도 녹음방초 승화(勝花)시라 옛부터 일러 있고…> 애절할 것도 즐거울 것도 없는 담담한 소릿조와 간결한 북장단에 맞추어 부르는 단가 한 대목. 노련한 명창의 담담한 노래에 섣부른 추임새가 당치 않지만 노랫말을 음미하다 보면 조용하고 따뜻하게 배어나오는 웃음을 감출 길 없다. 왔다가 어느새 가버리는 봄을 향해 「가려거든 가라」고 큰소리도 쳐보고, 네가 가면 더 좋은 세월이 올테니 아쉬울 것 없노라 위안도 해보지만, 결국은 「가는 세월 아까워 어쩔거나」싶어 계수나무 가지에 매달아 놓고 마음맞는 벗과 함께 거드렁거리며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을 풀어놓는 노래. 잰 걸음으로 떠나는 봄을 이런 마음으로 보낸다. 단가 한 대목처럼 아주 담담하게. 이산> 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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