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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한옥촌/咸在鳳 연세대 교수·정치학(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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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한옥촌/咸在鳳 연세대 교수·정치학(한국논단)

입력
1998.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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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수백년된 고도라는 것을 증명해 줄 수 있는 물증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몇개의 궁궐이 「전시효과」를 내고 있지만 서울이 찬란한 역사를 갖고 있는 도시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증거들은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남아있는 서울의 5대 궁궐, 종묘, 운현궁 등은 이미 살아있는 건물들이 아니다. 주인도 없을 뿐더러 아예 사람이 살 수 없게 겉모습만, 빈 껍데기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그야말로 「구시대의 유물」에 불과하다.최근에 문을 연 남산 한옥촌도 일상속에 남아 있는 전통 수도 서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오히려 전통문화를 파괴하면서 전시효과만 노리는 잘못된 문화정책의 전형이라는 점은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다. 언론에 여러차례 보도되었듯이 공사가 부실했고 고택(古宅)들을 옮기는 과정에서 전통건축기법들이 무시되면서 겉만 번드르르한, 철학과 혼이 빠져버린 집들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원래의 자리, 문화적인 맥락에서 뿌리뽑힘으로써 「화석화」된 박물관용 건물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서울의 사대문 안, 특히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한옥촌의 의미는 실로 지대하다. 한국인들의 전통 주거문화를 아직도 보존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외국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물론, 각박하고 획일적이고 「거대병」에 걸려 있는 대도시 서울에서 우리의 전통문화가 어떻게 실질적으로 적응하고 유지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문화실험장이다.

그런데 그동안 한옥보존지구 지정이 슬그머니 해제되더니 고색창연한 한옥마을은 재개발주의자들의 표적이 되면서 급속히 파괴되기 시작하였다. 비판적인 여론을 의식한 행정기관에서는 고층 다세대주택을 짓더라도 지붕에 기와만 얹으면 된다고 하여 기괴한 모습의 건축물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이 우리 문화정책의 현주소이다.

최근 들어서 가회동 계동 등지에 남아있는 한옥촌의 파괴가 개발업자들의 자금난으로 일시나마 중단된 것은 참으로 불행중 다행이다. 현금의 경제위기가 가져다준 몇 안되는 긍정적인 효과중 하나이다.

우리는 이 기회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서울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서울을 어떻게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 것인가? 세계인들이 기억하는 서울의 모습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 고층건물인가? 거대한 도로들인가? 그것은 절대 아니다. 파리와 로마, 피렌체, 교토(京都)등 모든 세계적인 도시들은 「옛마을」(Old Town)을 간직하고 있다. 서울의 Old Town은 한옥촌 지구 뿐이다.

황폐화되어 가고 있는 한옥촌에서 다 허물어져가는 고옥을 사들여 개축, 보수하여 살면서 한옥의 철학과 정신, 그리고 미학을 설파하고 한옥의 보존을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한 건축가에게서 얼마전에 들은 한숨섞인 말을 상기해 본다.

『집을 그저 투자와 투기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작금의 한국인들의 사고방식이 너무나 큰 문제다. 사실 우리는 그저 와서 잠깐 빌려쓰고 가는 건데…. 물려받은 것을 잘 가꿔서 다음 세대에 또 물려주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우리 후손들에게는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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