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골은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영국 런던으로 망명한 후 기억에 남을만한 연설을 남겼다. 「프랑스는 전투에는 졌지만 전쟁에는 지지 않고 있으며, 프랑스인은 어디에 있든지 나의 깃발 아래 단결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조국을 잃은 처지에도 불구하고 이 장엄하고 패기있는 웅변은 희망의 나팔 처럼 전세계에 울려 퍼졌다.미국의 「타임」지 최근호는 20세기를 회고하는 특집에서 「금세기 가장 위대한 4개의 연설」을 소개하고 있다. 아쉽게도 이 목록에서 드골의 명연설은 빠져 있다. 제일 비중있게 취급된 것은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연설이다. 「역사상 위험이 최고조에 이른 시간에 자유수호의 역할을 부여받은 세대는 몇 되지 않는다. 나는 그 책임을 피하지 않고, 환영한다…나의 동료인 미국인들이여, 조국이 자신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자신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어라」는 이 연설은 너무나 유명해져 있다.
「우리가 오로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자체」라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취임사, 「나치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프랑스 땅이든 대양에서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항전을 독려하는 처칠 영국총리의 연설, 「내게는 예전 노예의 아들과 노예소유자의 아들이 형제처럼 함께 식탁에 앉을 수 있는 꿈이 있다」는 킹 목사의 외침등 다른 3개의 연설도 우리에겐 벌써 낯익다.
TV의 보편화로 육성적 대중연설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경제난이 심각한 지금 「명연설」과 「위대한 연설」의 차이를 생각해 본다. 케네디와 킹 목사의 암살에서 보듯이 위대한 연설은 위기와 고난 속에서 나왔고, 거기에 담긴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가 역경을 극복하는 원천이 되었다. 화려한 수사가 연설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을 정직하게 전달하고 신뢰와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이 위대한 연설, 위대한 정치의 근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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