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시장에도 3조2,000억원/외국자본이 좌우하는 국내시장/자금성격에 무관, 환율등 불안때 언제든지 엑소더스가 벌어질수 있다「핫머니가 한국호(號)를 침몰시킬지도 모른다」 국내 금융시장의 개방으로 외국자본의 거대한 물결이 밀려들면서 높아가는 우려이다. 영국(92년) 멕시코(94년) 동남아시아(97년)에 이어 한국이 세계금융시장을 휘젓고 다니는 핫머니의 다음 희생양이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의 목소리다.
이미 국내 금융시장은 대대적인 외국자본의 상륙으로 자본전쟁의 「작전권」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인이 주식을 사들이면 주가가 올라가고 반대로 외국인이 주식을 내다팔면 속절없이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전형적인 「외국인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외환시장도 환차익을 노리는 외국인자금의 유출입에 따라 요동을 치는 기현상의 연속. 「외국인의 법칙」이 국내 금융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국내 주식시장에 들어와 있는 외국자본의 규모는 3월말 현재 17조9,554억원(시가총액의 19.1%). 채권시장에도 3조2,310억원의 달러가 묻혀있다. 이들 외국자본들이 모두 핫머니일까.
국제통화기금(IMF)사태이후 국내 주식시장을 가장 먼저 노크한 것은 바로 소로스 펀드를 선두로 한 헤지펀드였다.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 위험이 큰 만큼 이익도 크다는 것이 헤지펀드의 기본적인 투자원칙이다. 헤지펀드들은 달러당 원환율이 1,700∼1,800원대까지 치솟던 시점에서 바닥까지 떨어진 삼성전자, 한전등 블루칩들을 마구잡이로 사들여 주가를 떠받치기 시작했다. 이는 바로 환차익을 챙기면 곧바로 빠져나가겠다는 의도. 12월말부터 1월중순까지 모두 1조5,000억원의 핫머니들이 집중적으로 유입됐다.
이후 국내 금융시장에 유입된 자금은 주로 미국의 템플턴 펀드와 오크마크 펀드등 2∼3년정도의 중장기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뮤추얼 펀드로 파악된다. 1,500원대의 환율안정세와 회복추세에 있던 국가신인도를 담보로 한 비교적 안정적인 투자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미국의 연 기금등 장기자금들도 국내 투자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 자금들이 중장기자금이라고 믿었다가는 큰코 다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국민투자신탁운용 강창희대표전무는 이들 외국인투자에 대해 『자금성격에 관계없이 환율이 불안해지고 금리가 불리해지면 언제든 떠날 준비가 돼 있는 핫머니성 자금』이라고 규정했다. 강대표는 그 이유에 대해 높은 금리에도 불구, 채권쪽보다 발을 빼기 쉬운 주식쪽에 2배이상, 그리고 그나마 채권투자도 장기채보다 10일물짜리 통안증권에 80%이상 몰려있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외국자본들은 언제 국내시장을 떠날 것인가. 대우경제연구소 정유신 국제금융팀장은 ▲엔화폭락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 단행 ▲동남아국가의 모라토리엄사태등 돌발적인 외부쇼크로 인한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이 외국자본의 대거 철수를 부추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국내 변수. 해외현지차입금에 대한 기업들의 롤오버(만기연장)가 실패할 경우 환율이 폭등할 것이라는 6월대란설이 도사리고 있다. 이와함께 지지부진한 구조조정등 개혁프로그램이차질을 빚을 경우 실망한 외국투자자들에 의한 달러의 엑소더스(대탈출)가 진행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외국자본은 이미 지난해 8월이후 3개월동안 모두 2조원에 달하는 주식을 팔아 치우면서 국내 금융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위력을 과시했다. 외환시장의 추가개방으로 달러군단의 파괴력은 더욱 높아져 있다. IMF위기 극복을 위해 끌어들인 외국자본이 제2의 외환위기 단초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김병주 기자>김병주>
◎전문가 진단/“투기요소 사전차단 위해선 정치·경제시스템 건전해야”/한상춘 대우경제연 국제경제팀장
지난해 동남아국가들의 통화위기에 이어 최근 일본의 금융위기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국제간 자본이동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대체적인 논의의 주조는 급격한 자본의 유출입에 따른 불안요인이 있긴 하지만 자본이동에 따라 기술, 지식이전 등의 잇점이 크기 때문에 이를 전면적으로 제한하기 보다는 투기자본의 이동에 대해서만 규제하자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투기자본을 규제하기 위한 실효성이 있는 방안을 도출해내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 개도국의 경우 투기자본에 의해 언제든지 침몰할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도 개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단기자본 유출입에 따른 피해를 우려해 왔다. 오는 7월부터는 모든 외환거래를 원칙적으로 자유화하는 새로운 외환법이 시행될 예정이다. 목적은 외자의 유입을 촉진해 금융위기를 해소하겠다는 것. 그 과정에서 우려되는 단기자본의 피해는 조기경보체제 개발, 외환거래세 및 가변외화예치제 도입을 통해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효과가 있을 것이냐 하는 점이다. 과거 금융위기를 겪은 국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때 수많은 조기경보체제중 제역할을 한 지표는 하나도 없으며, 외환거래세 등 투기자본 규제책도 효과적인 정책수단이 못되고 있다.
오히려 과거 우리정부처럼 취약한 경제구조의 개혁을 지연시킨채 자본이동에 관한 규제를 남용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만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사후감독방안도 대내외적으로 도덕적 합의(moral suasion)가 없는한 그 효과가 의문시되고 위반시 규제수단도 국제적으로 비난대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경제에 대한 투기적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정치 경제 등 제반 분야에서 건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정책의 우선순위가 모아져야 한다. 그래야 환율 금리 주가 등 가격변수가 경제현실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려운 과제임에는 틀림없다. 오랜 기간동안 젖었던 구습에서 탈피, 모든 정책과 관행이 투명해지고 경제주체간의 책임이 명확해진다는 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에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을 다시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내야 한다. 그래야 외자유입을 통해 현재의 외환위기 국면을 해결해 나가는 동시에 그에 따른 부작용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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