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部체제설 정면 부정 “왕이 6部를 통치”서강대 사학과 이종욱(52) 교수가 최근 한국사연구회 월례발표회에서 신라사의 정설로 돼 있는 「부(部)체제설」을 정면으로 부정,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부체제설은 신라 왕경(王京)이 서로 다른 씨족으로 된 6부로 구성됐으며 6부에는 각기 부장이 있고 왕도 한 부의 부장이었다는 이론. 6부는 각기 독립된 단위정치체를 이루고 있으며 왕을 배출한 박·석·김(朴·昔·金)씨도 6부를 구성하는 세력이었다. 부체제설은 이병도 김철준 이기백 천관우 노태돈 교수등으로 이어지면서 신라의 국가발전과정과 신라 상대(上代·7세기 중반까지)의 정치·사회구조를 해명하는 열쇠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교수는 「신라 부체제설에 대한 비판하나의 새로운 신라사 체계를 위하여」라는 논문에서 『사로국(斯盧國·신라)을 형성할 때부터 왕은 6부 세력보다 적어도 1, 2단계 높은 정치지배자가 됐으며 6부는 왕의 통치를 받던 최소 2단계 아래의 지방행정구역』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교수는 부체제설 주창자들이 근거로 제시하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관련 기사 및 경북 영일 냉수리비(冷水里碑), 울진 봉평비(鳳坪碑) 등 신라 중고시대 금석문 기록을 토대로 정반대의 결론을 도출했다.
그는 특히 『성골 진골 6두품으로 이어지는 엄격한 신분제인 골품제는 사로국 형성시의 신분제를 바탕으로 법흥왕 7년(520년) 율령반포 때 편성된 것』이라며 『부체제설을 따를 경우 노태돈(서울대)교수처럼 성골을 가상의 골족(骨族)으로 보게 되는등 골품제를 해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교수의 주장은 결과적으로 신라의 국가형성 시기를 통설보다 400∼500년 앞선 기원전 2∼1세기로 끌어올리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교수는 95∼97년 「화랑세기(花郞世紀)」의 신빙성을 주장하기도 했다.<이광일 기자>이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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