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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례식 관행을 깨자/朴昇 중앙대 교수·경제학(火曜世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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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례식 관행을 깨자/朴昇 중앙대 교수·경제학(火曜世評)

입력
1998.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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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앞선 나라에서의 혼례식은 교회에서 신부님이나 목사님에게 신랑신부가 혼인을 서약하는 것이다. 그리고 혼례식을 올린 부부는 자기 나름의 분수에 맞게 가까운 친지와 친척들을 초청하여 만찬을 대접한다. 초청받는 사람들은 작은 선물이나 축의금을 가지고 가기 때문에 신혼부부에게 특별한 경제적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니다.예식장 비용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예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주택은 모든 사람들이 월세집에 살고 있으므로 매달 월세를 내면 되는 것이다. 장롱이 필요없는 사회이니 살림살이라고 해봤자 당장 필요한 밥그릇이나 냉장고 같은 것만 마련하면 나머지는 살아가면서 갖추면 된다. 그러니 혼례식을 올린다는 것이 본인이나 부모, 또는 사회에 별로 부담이 될 턱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예식장 비용만도 수백만원이 든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돌려 예식장에 초대하고는 축의금을 받고 음식을 대접한다. 찾아온 사람과 이들이 낸 축의금액은 방명록에 기록하여 보관한다. 예식장에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그리고 축의금이 많이 걷힐수록 성대한 혼례식이라고 뽐낸다.

그 뿐인가. 서로 예물을 마련해야 한다. 신랑쪽은 함(函)을 만들고 신부쪽에서는 폐백준비, 그리고 신랑쪽 친척들에게 줄 예단을 마련해야 한다. 예단은 요즘 현금화하여 수백만원 또는 수천만원이 거래되고 있다. 거기다가 양가는 장롱과 가재도구를 사주어야 하고 주택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데 특히 전세집이라도 얻어줄 경우 그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다.

그러면 청첩장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하는가. 안갈 수가 없는 것이 한국사회이다. 축의금을 들고 가서 혼주에게 얼굴도장을 찍고는 곧바로 돌아오는 것이 통례인데 교통이 막히다 보니 그렇게 하는데 하루일을 팽개쳐야 한다. 이 얼마나 형식적이고 낭비적인 관행인가.

1년에 40만쌍이 결혼한다. 1인당 혼례비용이 지난해 평균 3,600만원이라는 보고가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1년간 혼례비용은 약 30조원에 이르고 이것은 국민총생산의 7%, 그리고 국민 1인당 70만원 이상의 부담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것은 우리 생활의 낭비이다. 그리고 그대로 사회적 비용으로 전가돼 고비용의 원인이 된다. 그뿐 아니라 일해야 할 하객들이 하루일을 팽개치는 사회적 손실, 축의금의 사회적 병폐, 그리고 교통난을 유발하는 사회적 비용은 얼마인가. 이렇게 본다면 우리나라의 혼례식 관행은 낭비적 소비로 인한 저생활(低生活)의 원인인 동시에 고비용으로 인한 저성장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 낭비적 관행을 혁파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시도해본 경험이 있다. 나는 다섯자녀를 두고 있는데 첫째와 둘째의 혼례를 성당에서 순수한 가족행사로 치렀다. 청첩장이나 축의금 같은 것을 모두 없애고 가까운 친지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혼례에는 상대가 있는 만큼 한쪽에서만 그렇게 하는데 따르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러나 더 큰 어려움은 대인관계의 문제였다. 나는 친구들의 혼례식에 찾아 다니면서 나의 집 혼례식은 알리지 않고 보니 결과적으로 친지들에게 큰 정신적 부담을 주는게 문제였다. 그래서 셋째의 혼례식에는 관행을 좇아 청첩도 하고 축의금도 받고 음식도 대접하였다.

그 결과 다시 확인한 것은 혼례식 병폐의 심각성이며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혼례식의 낭비적 관행은 혁파해야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래서 이제 남은 두 놈의 혼례식에는 청첩장 축의금 방명록은 물론 함과 폐백과 예단까지도 없애기로 작정하였다. 모두들 여기에 동참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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