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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이게 뭡니까(東窓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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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이게 뭡니까(東窓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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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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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변두리 어느 지역구의 자민련 지구당위원장인 한 젊은 정치인이 같은 지역구의 국민회의 소속 지구당위원장과 직접 만나서 담판을 한차례 벌일 수 밖에 없었던 속사정이 틀림없이 있었을 것입니다.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공조체제를 유지해 왔을 뿐만 아니라 명색이 연합집권으로 알려져 있는데 16대 총선이 2년 뒤인 2000년에 실시될 수 밖에 없다면 두 위원장 중에 누가 여권의 후보로 출마하느냐 하는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만일에 국민회의측에서 출마를 고집한다면 그 지역의 구청장으로라도 출마해야 할 현실적 문제를 안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 사람의 지역구 위원장들이 만나서 서로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를 해 본 결과는 의기양양한 국민회의의 지구당위원장 입장에서는 매우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르나 열세에 몰려있는 자민련 지구당위원장의 입장에서는 다만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는 것입니다. 『국민회의에서 국회의원 후보를 내놓는다면 우리는 이 지역의 구청장후보라도 내놓아야 할 게 아닙니까』 이것은 물론 자민련위원장의 항변이었습니다.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구청장도 우리가 내야 하고 시의원 두 사람도 우리가 내야 하고 구의원 12명중 9명까지도 우리가 내야겠으니 자민련의 몫은 구의원 세사람 뿐입니다』 이것은 물론 국민회의 지구당위원장의 자신만만한 한마디였습니다.

자민련위원장은 하도 어이가 없어 『아니 지난번 15대 대통령선거때 자민련에서 김대중 오늘의 대통령을 단일후보로 하기 위해 김종필총재가 후보사퇴를 했고 자민련의 모든 당원들이 열과 성을 다하여 선거전에 임하였을때 집권하면 5대 5라고 공언한 사실을 어찌할 것입니까』 그런 항변을 또한번 늘어놓았으나 상대방은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호남출신의 이 지구당위원장은 한걸음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한마디로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차관급 38명중에 전라도 출신이 몇 되지도 않습니다. 국민회의에서는 왜 호남사람들을 좀 더 등용하지 못하느냐고 대통령에 대한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까』 그 말을 듣고 자민련위원장은 『그러나 자민련 추천인사는 단 한명도 없지 않습니까. 결론은 공동정권 약속을 깨는 것으로 알고 우리도 자민련 단독으로 지자제 선거를 준비하겠소』

이리하여 두 사람의 회담은 요새 여야간의 정치회담이 번번이 결렬되듯 마침내 결렬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각하 이런식으로 나가면 6월로 다가온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있어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공조체제는 무너지고 말 것이 불을 보듯 명백하다 하겠습니다. 집권하시고 두달도 안되어 두 당의 공동집권이 완전히 퇴색해 버린다면 자민련에 소속한 정치인들만이 난색을 표명하게 되는 것 뿐만아니라 국민에게도 큰 실망을 안겨줄 것이 너무나도 뻔하다 하겠습니다.

야당인 한나라당에서 도저히 전통적 야당노릇은 하기 어려운 몇몇 국회의원들이 그래도 자민련을 찾아와 입당수속을 밟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사실을 각하께서는 모르고 계실 리 없습니다. 정계개편은 매우 자연스러운, 그리고 훈훈한 봄바람을 타고 우리 정계를 어루만지고 있거늘 일선을 담당한 국민회의 인사들은 어찌하여 그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까. 각하를 개인적으로 잘알고 있는 사람들은 정치인으로서의 김대중씨의 가슴속에는 꿈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꿈은 이제 어디로 갔습니까. 각하, 이게 뭡니까.<金東吉·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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