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脫出速度(金聖佑 에세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脫出速度(金聖佑 에세이)

입력
1998.04.18 00:00
0 0

탈출속도(脫出速度)라는 것이 있다.로켓을 발사하여 인공위성을 하늘에 띄웠을 때 그 인공위성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지구의 궤도를 회전하려면 상당한 속도가 필요하다. 이것을 원궤도(圓軌道) 속도(제1우주속도)라 하고 고도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초속 약 7.9㎞로 친다. 원궤도속도에서의 회전은 원심력과 지구의 중력이 보합된 상태다.

달이나 화성을 향해 가는 우주선은 지구의 궤도를 뱅뱅 돌면서 노닐고 있어서는 안된다. 우주선이 지구의 중력권에서 벗어나자면 속도가 원궤도속도를 넘어서야 한다. 이 속도가 탈출속도(제2우주속도)요 보통 초속 약 11.2㎞로 계산한다. 시속 100㎞의 자동차가 초속 27.8m이고보면 탈출속도의 빠르기는 눈이 어지럽다.

우주탐사의 발전은 특수연료에 의한 이 탈출속도의 창출 덕택이었다.

자연과학은 사회과학에 많은 힌트를 준다. 속도는 속력이다. 운동하는 모든 물체에는 고유의 힘이 있고 움직이는 사회에는 자체의 힘이 있다.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으로서의 정치도 물리(物理)다. 사물의 도리다. 자연과학에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 있듯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끼리는 에너지 동가(同價)의 법칙도 있을 수 있다. 힘은 만유인력(萬有引力)이듯이 만력공리(萬力共理)이기도 하다. 모든 힘의 이치는 같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 탈출속도다. 중력권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우리는 도처에서 아직도 구습이라는 인력(引力)에 매달려 있다. 당장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서 탈출하는 길도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의 관성과 타성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물리학에 있어서 관성이란 서 있는 물체는 계속 서 있으려 하고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 하는 성질이다. 기차 안에 서 있는 승객이 차가 갑자기 발차할 때 뒤로 넘어지려 하고 급정거할 때 앞으로 넘어지려 하는 것은 관성 때문이다. 모든 관성은 반항한다. 사람이 손으로 수레를 밀때 반작용을 받아 도로 밀리는 느낌을 받는 것은 물체의 관성에서 생기는 것으로 관성저항이라 불린다.

IMF난국을 극복하기 위한 기업들의 개혁이 아직 흡족스럽지 못하다. 이것이 관성저항이다. 그러나 기업뿐이 아니다. 이런 기업에 불만을 터뜨리는 정부 또한 마찬가지다.

새 정부는 경제위기 타개에 전력을 다하는 것 같아 보인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요 6·25이후의 큰 국난이니 당연하다. 그러나 그 방식에 회의가 생긴다. IMF위기에 대한 한국기업의 대책이 지나치게 단기적 안목이라는 한 외국 컨설팅회사의 지적이 있기도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지나치게 IMF적이다. 환란(換亂)은 근인(根因)이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실이다. 정신의 빈곤 탓도 있고 문화의 경시 탓도 있다. IMF난국은 경제논리만으론 풀수 없다. 한국적 고질을 근치하지 않으면 설령 한때 IMF의 터널을 지난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그 위기가 재발하고야 만다.

총체적 부실을 청산하는 길은 총체적 개혁이다. 새정부가 들어서서 IMF사태와 씨름하는 일 외에 하고 있는 일은 북풍조작 수사요 환란 문책 수사요 종금비리 수사다. 전 정권의 잔무정리에 매달려 있다. 그것도 재발 방지를 위한 방책이라고는 하겠지만 그 보다는 근본적이고 전반적인 개혁 프로그램의 제시가 필요하다. 이것이 없다.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당면과제 때문에 다른 개혁이 제자리 걸음하고 있다. 과거의 인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직도 원궤도 속도로 옛 궤도위를 돌고 있는 느낌이다. 당장이 아무리 급하더라도 총체적 개혁의 병행없이는 경제개혁이 성공하지 못한다. 이 개혁을 위해 필요한 것이 탈출속도다. 반 개혁의 힘은 지구의 중력처럼 강하다. 개혁은 관행에서의 일탈이요 관성과의 단절이다.

탈출속도는 아무 정부에나 바라지 못한다. 특히 정권이 여당에서 여당으로 승계된 정부하에서는 관성의 인계때문에 탈출속도와 같은 거대한 새 힘의 창출이 어렵다. 건국이래 최초의 평화적 여야 정권교체로 등장한 새 정부에 기대가 있다. 정권교체는 관행의 교체다. 그리고 어느 정권이나 초기에 가장 큰 힘이 생긴다. 더구나 경제위기는 국민통합에 큰 뒷바람이 되어준다. 지금이 구 시대의 인력으로부터 탈출할 절호의 찬스다.<본사 논설고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