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중반 정부 경제부처의 한 고위관리는 부하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업무를 담당하다 보면 압력과 청탁이 부지기수에 달한다. 특히 권력층과 정치권이 은근히 내미는 이권관련 청탁은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종종 빠지게 된다. 그럴때 청탁을 들어주더라도 그들이 알선해준 뒷돈을 받아서는 절대 안된다. 청탁건으로 그후 문제가 생기면 그들은 요리조리 피해가지만 우리들은 꼼짝없이 당하게 된다』이 경제관리는 이러한 처세술 때문인지, 그렇지 않으면 능력이 뛰어난 탓인지 그후 경제총수까지 지내고 지금도 국내경제 현안에 가끔 훈수를 두는 원로중 한명이다.
검찰은 환란(換亂)주범중의 하나로 지목받고 있는 종금사 무더기 인가 과정과 외환위기 당시 종금사가 긴급자금 지원을 받기위해 정·관계에 로비를 한 혐의를 잡고 본격수사에 착수했다. 옛 경제부처 고위관리들이 줄줄이 출국금지 조치를 당하는가 하면 계좌추적까지 벌어지고 있다. 또 일부 현직 경제관리는 종금사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지금 홍역을 치르고 있는 경제부처 관리들에게 옛 선배의 충고는 이미 퇴색된 규범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경제부처 관리들은 어떠한 처신이 그들의 입신(立身)을 보장하는지 구전(口傳)으로 익히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번에 터져나온 종금사 비리에 경제부처 관리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바로 정치권력이 뒷전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가설(假說)이 그래서 성립한다. 그들은 정치권이 개입한 청탁에는 결코 돈을 챙기지 말아야 한다는 선배의 충고를 깜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걱정되는 것은 정치권력은 옛 경제관리의 말대로 「요리조리 피해가고」 심부름한 경제관리들만 혼나는 검찰수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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