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나 특혜보다 실력 발휘할 일터가 더 절실”/피나는 교정운동·독학으로 정보처리자격증 취득/이젠 장애인동료 추천의뢰 받을만큼 직장서 인정취업정보 제공회사인 (주)리크루트 전산실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정재학(27)씨는 전화받는 일이 가장 어렵다. 『여보세요』라고 말하면 상대방이 그냥 끊어버리기 때문이다. 『거래처에서조차 잘못 걸린 줄 알고 끊곤 했다』는 정씨는 『옆사람이 대신 받게 했지만 요샌 끊든 말든 직접 받는다』고 말한다.
정씨는 말이 어눌하고 걷는 것이 힘겨운 뇌성마비 3급 장애인. 장애인의 날이 다가오는 요즘 정씨는 『전화 통화에서 보듯이 아직도 장애인이 함께 살아가기에는 벽이 있다』고 말한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머리에 왼쪽 다리도 뒤틀린 상태이지만 정씨는 컴퓨터 만큼은 전문가다. 왼손에 마우스를 쥐고 굽은 오른손으로 자판을 두드린다. 정씨의 업무는 각 대학 취업정보실 관리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일. 지금은 연봉 1,600만원의 어엿한 직장인이지만 3년전만 해도 집에서 컴퓨터와 씨름하는 일이 전부였던 「백수」였다.
부모가 정씨의 장애를 알게 된 것은 첫 돌 무렵. 그때까지도 머리를 가누지 못했다. 부모는 정씨를 업고 안 다녀본 병원이 없다. 68년생인데도 출생신고가 71년으로 된 것도 그 때문이다. 몸은 불편해도 공부는 곧잘 해 특수학교인 삼육학교를 마쳤고 2년만에 중퇴했지만 90년 방송대(불문과)도 입학했다.
정씨가 처음 좌절감을 느낀 것은 중3때. 가게에서 물건을 샀는데 바보로 취급하고 거스름돈을 속였다. 안 나오는 말로 항의하면서 정씨는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소용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공부는 제쳐두고 단전호흡 다리교정체조등 운동에 몰두했다. 덕택에 다리나 손이 덜 뒤틀리고 건강이 좋아졌다. 정씨는 『나보다 실력이 뛰어난 뇌성마비친구들이 장애가 너무 심해 취직하지 못하는 점을 생각하면 그때의 좌절이 나를 도와준 셈』이라고 말한다.
컴퓨터는 고3때 처음 만났다. 재미를 느낀 정씨는 90년 장애인직업훈련원 전산과에 입학, 정보처리기능사(2급) 자격증을 땄다. 아내 이은화(28)씨도 여기서 만났다. 91년 경기 일산이나 광주(光州) 덕산훈련원에 들어가 컴퓨터를 더 공부하려 했지만 장애가 심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걷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중간장애인데도 입학이 좌절되었다』. 386컴퓨터로 집에서 독학하기를 3년, 그동안 31군데의 기업에 이력서를 냈으나 어디에서도 연락이 없었다. 95년에 아는 사람의 소개로 중소기업 「중앙텍크팩」 전산실에 취직했다. 그 후 제이비하이테크등 세 군데를 거쳐 지난해 8월 (주)리크루트에 입사했다.
인천 집에서 서울 명동까지 지하철 출·퇴근에 2시간이 걸리지만 일하는 즐거움에 고생을 모른다. 『처음엔 상사나 동료들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우려했다』는 정씨는 요즘 회사에서 함께 일할 장애인프로그래머를 추천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현재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는 뇌성마비장애인은 20여명이지만 취직한 사람은 대여섯명에 불과하다.
정씨는 장애인 특례입학같은 특별대우에 대해 부정적이다. 『교육기회를 많이 갖는 것은 좋으나 사회에 나오면 여전히 장애인은 냉대받는다』는 정씨는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일할 기회를 더 마련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한다. 장애인에게도 『무조건 보호받으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노향란 기자>노향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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