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같은 풍채 따뜻한 마음/한시·음악 등 못하는게 없던 ‘전인적 교양인’ 김홍도김홍도(金弘道·1745∼1806?)에 대해 얘기하라고 한다면? 호가 단원(檀園)이고 조선 정조때 풍속화를 잘 그린 유명한 화가…. 이쯤 말하고 나면 대부분 답이 궁해질 것이다.
오주석(42·서울대 강사) 간송미술관 연구위원이 낸 「檀園 金弘道―조선적인, 너무나 조선적인 화가」는 본격적인 단원연구서로 천재의 참모습을 펼쳐보이면서 우리의 무지를 은근히 부끄럽게 한다. 『단원은 산수 꽃 새 동물 풍속화 고사(故事)인물 신선 초상화는 물론 불화에서 삽화와 판화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그림을 다 잘 그렸으니 나라에서 으뜸가는 화가였다. 무엇을 그려도 우리 맛이 우러나게 그린 가장 조선적인 화가였다. 글씨도 대단히 잘 썼으며 문학면에서도 한시를 척척 지을 만큼 도저했다. 대금이며 거문고를 잘해 음악가로도 이름이 났다. 풍채는 신선같았으며 키도 훤칠했다. 또 술과 해학을 무척 즐겼고 솔직하고 무던하면서도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과부가 된 딸이며 늦게 본 외아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아버지였다. 중인신분의 화원(궁중화가)이었지만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전인적 교양을 갖추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질병과 가난에 시달린 불우한 말년은 1800년 정조 사후 정국이 일변하면서 그에게 굄을 받던 인물들이 된서리를 맞은 상황과 관련이 있다』
필자가 그려낸 이런 모습은 기존기록을 모두 모으고 새로 찾아낸 편지, 시조등 각종 자료를 토대로 한 것이어서 생생하다. 『95년 겨울 단원 탄신 250주년 기념 특별전시회를 열기 위해 2년간 호암미술관 객원연구원으로 자료발굴과 연구에만 매달렸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성과물입니다』
오씨는 새로운 사실도 많이 밝혀냈다. 예컨대 단원은 정조와 당시 장안 최고 갑부의 후견을 받은 만큼 가난하지 않았으며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서양화법연구를 위해 사신의 수행원으로 베이징(北京)에 가서 천주교당 벽화를 관찰했다. 사망시기도 통설(1812년에서 1818년 사이의 어느 해)과 달리 1806년께였다 등등. 자료원문을 일일이 주(註)로 처리한 정성이 돋보인다. 열화당. 2만2,000원.<이광일 기자>이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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