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가요·광고계 만연한 ‘표절하면 실패없다’ 풍토/수입불가가 모방유혹 더해고등학교 때까지 일본에서 살았던 박명희(26·서울 서대문구)씨는 대중매체를 접하다 보면 종종 언짢아진다. 일본과 똑같은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똑같은 포맷의 쇼 프로는 물론 드라마와 라디오에서는 일본에서 들었던 낯익은 멜로디가 들려 온다. 잡지를 뒤적이면 몇년전에 일본에서 봤던 광고가 분위기만 약간 바꾼 채 눈에 띈다. 『반일, 극일하자면서 왜 일본을 따라하는지 모르겠다. 창피하다』는 박씨의 말은 일본에서 살아 본 사람들일수록 더 공감한다.
각종 매체의 일본 베끼기는 이미 오래된, 공공연한 비밀이다. 방송이 가장 심각하다. 쇼 프로로는 최근 후지 TV의 「강력! 목요 스페셜 120분」의 코너를 그대로 베껴 문제가 됐던 SBS 「황수관의 웃음 천국」이 대표적이다. 드라마 중에도 지난해 MBC 「예감」이 논란을 부르는 등 표절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영화에선 얼마전 「학생부군신위」가 표절의혹을 받았고 가요에서도 최근 더 데이의 「정인」이 안전지대의 「미소에 건배」를, 김정민의 「비」가 다케오 키슈지의 「굿바이 데이」를 표절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차체위에 카드를 쌓아올리는 현대자동차 마르샤 광고, 삼양그룹 모자 광고 등 지난해말 광고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표절시비의 원본 역시 대부분 일본광고다.
왜 하필 일본인가. 제일기획 A대리는 『일본광고 표절작들은 대부분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꼭 베끼지 않더라도 일본광고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연구자료가 된다』고 말한다. 작곡가 B씨는 아예 제작자로부터 『요즘 대중들이 좋아하는 이런 스타일로 해달라』며 일본 음반을 건네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음반을 듣고 코드 진행은 그대로 둔 채 멜로디 라인만 살짝 바꾸었다. 주 멜로디의 소절을 반으로 줄이고 속도를 약간 빨리 하니 귀에 익으면서도 전혀 다른 노래가 만들어졌다.
공식적으로 수입이 금지되어 있어 모방을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발각될 확률이 적다는 것은 일본 베끼기의 또다른 유혹이다. 일본저작권 협회는 일본대중문화가 개방되면 표절 시비작들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경우 엄청난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해 표절 불감증에 걸린 한국대중문화계에 엄청난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일본은 그동안 자국문화의 유입과 저변확대를 내심 반겨 일부러 수수방관해 왔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정서는 만들어지기도, 길들여지기도 한다. 문화평론가 정윤수씨는 『대중문화 생산자들이 당장의 이익을 위해 베껴먹기에만 급급한다면 정서의 끊임없는 확대 재생산만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김지영 기자>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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