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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백제유적지(나들이 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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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백제유적지(나들이 학습)

입력
1998.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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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촌토성 흙으로 쌓은 우리나라식 성/고분공원 삼국시대 무덤양식 비교가능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궁금증은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길러주는 단초가 된다.

전교조 역사기행동호회 한민호(경수초등 교사) 교사의 안내로 고대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서울 올림픽공원내 몽촌토성, 송파구 방이동 고분공원과 석촌동 고분공원등을 돌아보자.

그는 『한강과 성내천을 끼고 있는 몽촌토성은 백제(BC 18년추정∼660년)의 초기 수도 하북위례성이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고 말한다. 8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발굴이 시작돼 복원된 몽촌토성은 말 그대로 흙으로 쌓은 성. 한씨는 『성이라면 첨탑이 있는 서양식 성만 상상하는 자녀들에게 이 기회에 우리나라의 성을 알려주자』고 권한다. 산마다 산성을 쌓고 동네마다 읍성을 쌓았을 정도로 우리나라도 성이 많은 나라. 이 중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화성처럼 뛰어난 건축물도 있다. 40분 가량 걸려 토성주변을 돌아본 뒤에는 몽촌토성의 발굴과정과 여기서 나온 유물등을 전시한 움집터 전시회, 몽촌역사관을 구경하도록 한다.

다음으로 찾아갈 곳은 몽촌토성에서 가까운 석촌동 고분공원과 방이동고분공원. 고분은 고대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이다. 무덤을 통해 고대인의 생사관, 당시의 가족제도, 기술발달등을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89기의 무덤이 있었다는 석촌동에는 현재까지 4개의 고분이, 방이동에는 10개의 고분이 복원돼 있다. 석촌동 3호 고분은 하단의 한변 길이가 40∼50m나 되어 고구려 장군총보다도 크다. 규모에 비해 출토된 유물은 금관을 장식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금조각, 토기 파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백제는 신라와 일본에 각종 세공기술과 건축술을 알려 주었을 정도로 기술이 뛰어났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작 유물은 신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그 이유는 무덤양식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삼국시대 무덤양식은 고구려의 돌무지무덤(적석총)에서 백제의 돌방무덤, 다시 신라 적석목곽분의 형태로 변화해갔다』고 설명한다. 적석총과 적석목곽분은 돌로 덮여 도굴이 힘들다.

반면 백제의 돌방무덤은 도굴꾼의 표적이었다. 돌로 방을 꾸민 뒤 흙으로 덮는데다 가족합장을 위해 사람이 수월하게 드나들 수 있는 문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다.

백제무덤도 초기에는 고구려식 적석총이었다. 석촌동고분은 적석총, 방이동 고분은 돌방무덤 형태이므로 석촌동 유적지가 먼저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번쩍거리는 금관도 화려한 유물도 없다고 심심해 하는 자녀들도 이유를 알게 되면 흥미로워 할 것이다.<김동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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