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의 환란(換亂)특감 결과가 발표된 11일 오후, 재정경제부는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1급을 포함, 많은 간부들이 고발, 또는 징계요구를 당하는 사상 초유의 수난에 직면하고도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이날의 침묵은 수뇌부 회의를 통해 사전에 모든 직원에게 함구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굳이 함구령이 없었더라도 재경부 직원들은 이날 아무말도 하고 싶지않다는 표정들이었다. 한때 전세계가 경이로운 눈길로 바라보았던 한국경제의 성장을 주도해왔다고 자부하던 엘리트 관료집단이 어느날 국난을 일으킨 「주범」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잊어 버린 것같았다.
그렇다고 재경부의 침묵이 자성을 뜻한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할 말은 많지만 지금 분위기에서는 해봐야 소용이 없다』고 항변하는 침묵으로 느껴졌다. 한 간부는 사석에서 『환란은 고비용 저효율, 무역적자등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수년동안 악순환을 일으켜 곪아 터진 것인 데 왜 화살을 재경부에만 겨누는가. 특히 환란의 도화선이 된 종금사 인·허가문제 등에 정치적인 입김이 개입된 점은 언급도 되지않고 있다』고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재경부의 침묵속에서 환란이 닥치기 직전 강경식(姜慶植) 전 부총리를 비롯한 당시 재정경제원 수뇌부가 「외환위기 가능성은 없다」고 부인하던 모습이 연상되는 것은 왜 일까. 재경부는 신정부들어 조직과 권한이 기획예산위원회, 금융감독위원회등으로 갈라져 나가고 경제정책을 한손에 장악하는 부총리급 부서에서 장관급 부서로 격하되는 수모를 당했다. 그러나 재경부는 여전히 한국경제의 위기탈출을 주도해야할 주역이다. 환란의 원인을 규명하려는 것은 경제위기를 초래한 경제관료들을 응징하기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제관료들이 과거의 오만과 독주에서 깨어나 거듭 태어나라는 간절한 채찍질임을 새겨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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