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포식 영업급급/신용평가는 걸음마/원시행태 벗어나야은행과 전당포는 다르다. 똑같이 돈을 빌려주는 곳이지만 전당포는 값나가는 물건(담보)만 잡으면 누구라도 돈을 꿔주는 반면 은행은 거래상대가 믿을만 한지(신용)를 평가한 후 돈을 내준다. 이 점에서 우리 은행들은 은행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대형전당포」라야 옳다.
담보는 가장 초보적 형태의 금융거래 매개체다. 재산을 맡아두고 돈을 꿔주는 일은 굳이 금융기관이 아니라도 된다. 금융은 곧 신용질서이고 신용정보가 완전노출된 오늘날 담보는 신용공백을 메워주는 문자그대로 마지막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한국의 금융풍토에서 담보(혹은 보증)는 대출결정의 「알파이자 오메가」이고 은행문턱을 넘는 유일한 지렛대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유망업종이든 사양업종이든, 은행원이 던지는 첫 질문은 예나 지금이나 『담보는 얼마나 있느냐』다. 총자산(96년 472조원)이 국민경제규모(97년 421조원)를 능가했고 전국적 점포네트워크와 첨단 온라인망이 깔릴 만큼 은행의 외형성장은 화려하지만 영업방식은 집문서, 땅문서를 잡고 돈을 꿔주는 원시적 행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은행들의 담보집착증세는 신용평가능력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모외국계은행 간부 S씨의 설명. 『국내기업에 거액대출을 하려면 해당업종 대출심사만 10년이상 전담한 전문가들이 본점에서 직접 파견된다. 이들은 기업가치와 시장전망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담보유무는 대출결정에 아주 부차적 요인이다. 자동차면 자동차, 반도체면 반도체등 각 업종별로 이런 베테랑 심사전문가가 은행내에 수십명에 달한다』
국내은행들은 어떤가. 신용을 심사할 전문가는 커녕 아마추어도 드물다. 직원수가 7,000∼8,000명에 달하는 대형 시중은행이라도 거액여신을 취급하는 심사역은 20명안팎에 불과하다. 20∼30개 업종을 거느린 재벌그룹, 굵직굵직한 여러개의 대기업을 한사람의 심사역이 맡는 경우도 허다하다. 모시중은행 심사담당 C씨는 『외국은행에선 기업 신용도를 파악하려고 오너의 건강검사, 심지어 배변까지 체크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거래업체로부터 공장증설을 위한 대출신청이 들어왔는데도 그 공장에 가보지도 않고 대출이 나가는 경우도 있다. 솔직히 담보잡는 것 만큼 편리한 것도 없다』고 실토했다.
자본 또는 자산을 굴려 얼마나 많은 이익을 내는지(은행영업의 수익성)를 가늠케하는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자산이익률(ROA). 95년말 현재 국내은행의 평균 ROE는 4.19%로 미국은행(14.72%)의 3분의1 수준에도 못미친다. ROA도 미국은행들이 1.18%인데 비해 국내은행은 0.38%로 초라하기 짝이 없다. 첨단 신용분석기법으로 무장한 미국은행들이 상륙했을때 담보로 잡은 부동산 평수나 세고 있는 국내은행들이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
「담보의 신화」는 지금 무참히 깨져가고 있다. 팔리지 않는 거대한 땅덩어리들이 은행을 부실의 늪으로 밀고 있다. 『담보를 가장 맹신하던 나라가 바로 한국과 일본이다. 그러나 부동산 버블이 꺼지고 심각한 불황이 닥친 뒤 두나라 은행들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한국은행 관계자는 지적했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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